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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Mar 06. 2024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병과 죽음





Edvard Munch, The Sick Child' 오리지널 버전. oil on canvas, 119.5 x  118.5cm,   1885–86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 






나는 예술 장르 중에서 감정 전달이 가장 미미한 것이 미술작품이라 생각했었다. 음악을 감상하거나 영화 혹은 연극을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었지만, 미술작품을 보면서 그런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뭉크의 작품을 보면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을 갔을 때이다. 뭉크의 작품이 전시된 방을 둘러보다 ‘병든 아이’라는 작품을 발견했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그 앞에 다가섰고, 서서히 그림에 빠져들었다. 


아픈 아이(소녀)가 침대머리에 기대어 앉아있다.

너무나 아파 움직일 기력조차 없다.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햇빛을 보지 못해 얼굴과 손은 흰 종이처럼 창백하다. 

병색이 깊어 금방이라도 두 눈을 감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바람 한 점이 날아와 소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소녀는 힘겹게 창밖으로 시선을 준다.

그림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두터운 커튼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꽃을 피운 나무들도 보일 것이다. 

소녀는 아프기 전, 엄마의 손을 잡고 꽃 길을 걷던 생각에 잠시 행복해져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지어본다.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여인은 석고상처럼 핏기 없는 아이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억장이 무너진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린다.

야윈 아이의 한 손을 잡고 여인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제발 우리 아이가 병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게 해 달라고......

대신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프게 해 달라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꿀 수 있다고.......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23세였다. 그가 14세 때에 세상을 떠난 누나 소피에를 그리워하며 그린 아픈 아이라는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나의 마음은 먹먹해지고 눈앞이 흐려짐을 느꼈다. 그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슬픈 감정이었다.

(뭉크의 어머니는 그가 다섯 살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므로 병든 아이의 옆을 지키는 여인은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준 이모 카렌의 모습일 것이다.)





Edvard Munch, The Scream, oil, 파스텔, 크레용 on canvas,  91 cm × 73.5 cm, 1893, National Gallery in Oslo, Norway.





뭉크의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절규'라는 작품이다. 아마도 뭉크라는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뭉크는 어느 날 해 질 녘에 두 친구와 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다리를 산책하다가 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목격했다. 그는 갑자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공포감이 온몸을 휘어 감았다. 뭉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고 필사적으로 귀를 막고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뭉크는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술회했다

뭉크는 이 잊을 수 없었던 경험을 빨간 구름과 검은 강줄기가 요동치는 것처럼 강렬하게 표현했고, 공포에 질린 자신의 모습은 해골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

너무 고통스러워 절규하는 이 작품은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아픔이 그대로 전달된다.


오슬로에 있는 뭉크 미술관에 가면 ‘병실의 죽음(Death in the Sickroom), 죽음의 침대( By the Deathbed), 죽은 엄마와 아이(The Dead Mother and the Child)라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려낸 작품들일 것이다.

그림 속에는 한결같이 애도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은 사람을 망연히 바라보는 모습, 좋은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 차마 시신을 바라볼 수 없어 다른 곳에 시선을 주고 있는 모습, 쓸어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벽이나 의자의 등받이를 한 팔로 잡고 있는 모습, 머리를 숙이고 상념에 잠겨있는 모습..... 이런 가족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특히 죽은 어머니와 아이라는 작품에서 겁에 질린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외면한 채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워 보인다. 

여자 아이는 누이인 소피에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Edvard Munch, Death in the Sickroom(Chamber), oil on canvas,  134 x 160cm, 1892, 오슬로 뭉크미술관




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작가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지폐에 초상이 등장할 정도로 국민들이 추앙하는 화가이다. 


많은 화가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에드바르트 뭉크처럼 비운의 화가도 없을 것 같다. 

그는 1863년 노르웨이의 뢰텐에서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와 예술적 교양을 갖춘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다섯 살 때 30세라는 젊은 나이로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한참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할 때 경험한 죽음은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다. 

두 살 위인 누이 소피에는 그가 14세 때 어머니처럼 결핵으로 숨진다. 설상가상 여동생 중의 한 명은 조울증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나이 26세에는 아버지를 잃었고, 32세에는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결혼을 했던 남동생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사랑했던 여성마저 화재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뭉크는 어려서부터 신경쇠약과 공황장애를 달고 살아야 했고, 평생을 죽음의 공포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했다.

이렇듯 어두운 기억들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작품의 주제는 병, 불안, 고통, 죽음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dvard Munch, By the Deathbed, oil on canvas,   90 x  121cm ,  1895, 오슬로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뭉크의 작품이 흘러넘친다. 오슬로 국립미술관에도 상당수 있지만, 뭉크 미술관에는 무려 2만 점 이상이 소장되어 있다. 뭉크가 국가에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3년에 개관하였다.  


젊은 시절 뭉크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작품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오슬로 교외에 집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며 그림에만 전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던 뭉크는 1944년 80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작업실에는 1,000점 이상의 회화, 15,400점의 판화, 4,500점의 드로잉과 수채화가 있었다.

그가 이토록 엄청난 작품을 제작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구어 내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Edvard Munch, The Dead Mother and the Child,   oil on canvas, 105 x 178.5 cm ,  1897/99년, 

오슬로 뭉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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