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준 Jan 17. 2024

About Me




나의 늦깎이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영국은 대학원 과정이 1년이다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10 초에 시작하여 그다음 해 7월에 끝나기 때문에 10개월이 채 안된다그 사이에는 크리스마스와 이스터하프 텀 휴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짧은 시간을 최선을 다하며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그러나 외국 인으로써특히 나이가 들어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언어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강의 시간에는 귀에서 놓쳐버리는 단어나 문장들 때문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나중에 교재나 배부된 참고자료를 훑어보아야만 했다.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 중에서 프레젠테이션이 가장 신경이 쓰였다대학원은 3 텀으로 되어 있어 텀마다 20여분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리서치를 하고 있고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그리고 관심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를 해서 발표해야 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글을 준비할 때는 두 딸이 옆에서 도와주었지만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미술 용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 중에 테레사라는 영국태생의 여성이 있었다. 40이 넘은 나이로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포용력이 있었다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스페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서 공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타국에서 원활하지 못한 언어의 불편함과 외로움을 경험한지라외국 학생들에게 관대했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두 딸의 도움을 받아 쓴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원고를 기꺼이 읽으며 문장을 수정하고 내용이 빈약한 부분은 보충해 주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너는 영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다발음이 틀려도 괜찮다문장 연결에 미스가 있어도 괜찮다영어로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교수들과 학생들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그러니 여기서 네가 최고다불안해하지 마라. 

그녀의 따스한 격려와 도움 때문에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높은 파도를 흔들림 없이 넘을 수 있었다

 

윔블던 칼리지 어브 아트에는 한국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부생들이었다학교 규모가 크지 않아 그들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들 중 몇 명은 나를 무척 따랐다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버팀목처럼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내가 한국에서 20년 동안 교직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선배라고 부르기도 마땅치 않고 아저씨라고 부르기는 더욱 어색하게 느껴져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우리는 학교 칸틴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고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기울이기도 했다

 

유학생 중에 일부는 집안이 부유하여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활하기도 했지만공부에 아르바이트두 마리의 토끼를 쫓느라 시간이 부족하여 패스트푸드인스턴트식품으로 건강을 잃어가는 학생들도 있었다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하고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나는 특별한 음식을 할 때는 양을 충분히 해서 몇 명을 초대하곤 했다

아내가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은 전무한 상태였다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도 있었다바로 만두와 캘리포니아 롤이었다어디서 특별히 배운 것은 아니었다교민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식탁에 오른 음식을 보며 레시피를 물어보며 귀와 눈동냥으로 주워 담은 것이었다기억을 떠올려 집에서 한 가지씩 만들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누군가가 사람은 창조물 가운데 요리를 할 줄 아는 위대한 동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요리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는데나도 그 대열에 들어선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우선 만두 레시피는 생 배추를 깨끗이 씻어 잘게 썰고양파대파도 송송 썬다생 배추의 수분을 제거한 후양파대파 썬 것곱게 간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버무리며 간장소금으로 간을 맞춘다이로서 만두소는 완성이다다음은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어낸 후펄펄 끓는 물에 익혀 건져내면 끝이다.

캘리포니아 롤은 오이당근파프리카(빨강노랑녹색), 아보카도를 길쭉하게 썰어 색을 안배하여 커다란 접시에 맵시 있게 담아낸다양파양송이를 잘게 썰어 프라이 팬에 각각 볶고간 소고기도 볶아낸다계란을 풀어 얇게 부쳐내어 역시 길쭉하게 자른다혹은 스팸을 길쭉하게 잘라 볶아내고간장에 고추냉이를 약간 풀어 작은 종지에 담아낸다각자 준비된 개인 접시에 절반으로 자른 김을 한 장 올려놓고 그 위에 밥을 얇게 편다자기 식성에 맞는 것들을 그 위에 골고루 올려놓고 김을 둘둘 말아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청국장은 아내가 한국에서 소포로 보내며 레시피를 동봉했는데조리법이 간단했다.

멸치로 국물을 낸 후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볶아낸다배추김치를 썰어 멸치국물에 볶은 돼지고기와 함께 넣고 끓인다간장으로 간을 맞춘다자른 두부를 넣는다끓기 시작하면 청국장을 풀어서 넣어 저어주고마지막으로 대파 썬 것을 얹으면 완성이다

 

초대되어 온 학생들은 음식을 겁이 나도록 많이 먹었다. 5개만 먹어도 배가 부른 왕만두를 열개는 보통이고 15개 이상 먹는 학생도 있었다캘리포니아 롤이나 청국장을 준비한 날은 2  3그릇의 공깃밥은 예사였다

배탈이 날까 봐 걱정스러워 식사 후엔 그들에게 소화제를 주기도 했다.

 

나는 대학원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그렇다고 두 딸에게 소홀히 한 적은  없었다내 공부 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가 두 딸이니까

나의 강의는 10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일찍 등교하는 두 딸을 차에 태워 데려다주었다버스를 이용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고학교 앞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아침부터 복잡한 버스 안에서 시달려 지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두 딸의 하교 시간에도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차를 가지고 가서 픽업을 했다

음식 또한 정성을 다했다음식이 보약이라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나도 신봉하고 있었다두 딸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마음이 뿌듯했고깨작거리다 말면 신경이 쓰였다

건강한 몸을 지키는 것은 운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로이드 스포츠 센터에도 주중에 2주말에 1회는 두 딸을 데리고 출석을 하는 것을 엄격히 지켰다

 

7월 중순에 졸업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대학원 생활을 총 결산하고 평가받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스터 2주간의 휴가가 끝난 4월 중순부터 학생들은 작품에 매달려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살다시피 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고군분투해 왔다. 

나의 작품 주제는 대학원 생활 시작부터 일관되게 자연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Song of Nature로 미리 정해 놓은 상태였다. 나는 꽃, 나무를 소재로 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시각적으로 이건 꽃이다, 이건 나무다 알 수는 있지만, 마음속에서 재구성해서 창조해 낸 형체들이었다. 이미지들은 페인팅으로 그리기도 했고, 에칭, 애쿼틴트, 실크스크린 등의 판화 기법으로 제작했다. 

6월 중순까지 충분한 이미지들을 제작한 후에는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를 했다. 그다음은 다양한 테크닉과 변화와 속도를 달리하면서 10분 길이로 편집을 했다. 자연의 소리, 이를테면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노랫소리 빗소리 같은 음향과 단조로운 음악도 간간이 삽입했다. 

지도교수와 작품에 관해서 수시로 의사를 교환하며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으로 드디어 비디오 작품이 완성되었다.


졸업작품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독립된 공간에 그동안 열정을 담아 제작한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했다. 작품의 사이즈나 수에 따라서 공간의 크기가 각기 달랐다. 나는 비디오 작품을 보여 주어야 했으므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큰 공간을 배정받았다. 33 제곱미터의 크기였다. 조명을 소등하면 칠흑처럼 어둡게 암막을 설치하고 의자도 배치해 놓았다. 

프로젝터 화면을 비출 스크린 사이즈는 240 x 180cm였는데, 평면의 하얀 스크린이 아니라 합판에 송곳으로 무수한 구멍을 내고 하얀 꽃들을 촘촘히 꽂았다. 주로 흰 국화였지만, 변화를 주기 위하여 군데군데 흰 릴리와 장미꽃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스크린 용으로 만든 판이었지만 그것 자체로 멋진 작품 같았다. 아냐 갈라치오 (Anya Gallaccio)라는 여류 작가의 작품이 연상되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2000 송이의 빨간 아프리카 민들레(Gerbera)를 대형 발에다 꽂아 전시를 한 일도 있었다. 

비디오 작품 CD를 프로젝터에 넣어 화면을 돌리면 영상이 꽃(스크린) 위에 비쳤다. 하얀 생화들은 내 그림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색과 모양으로 변화했다. 자연물과 영상이 만들어 내는 모습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새롭고 독특했다. 


일주일간 진행된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반응도 좋았다. 10분 동안 감상 후에 자리를 뜨지 않고 2회를 연속해서 보기도 했고, 재 방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전시회 기간 중 번거로웠던 일은 생화들이 시드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고, 매일 오전 오픈 전에는 부분적으로 싱싱한 꽃들을 교체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졸업 작품전에서 높은 실기 점수를 받았다. 퍼스트 클래스였다평가를 하는 교수와 강사들이 일주일 전시를 하는 동안에 몇 차례 방문하여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나쁜 점수는 아니겠구나 예상은 했는데의외로 높은 점수였다

에세이(논문)도 B학점이었다에세이 내용은 자신의 작품에 관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매끄럽게 문맥이 맞아떨어지게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그저 패스만 했으면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과분한 점수였다

 





이전 22화 윔블던 하이스쿨과 작은 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