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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Feb 21. 2024

출생률, 그리고 대한 가족계획 협회의 추억





우리나라 출생률이 심각하다. 1.3 명 미만의 저출산 사회로 진입한 것은 2002년이고, 2018년에는 출생률이 한 명 이하인 0.977로 떨어졌으며, 2024년 올해의 합계출산율이 0. 68명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한다. 

2022년에 0.78명으로 처음 0.7명대로 진입했고, 작년은 0.72명이었다. 

OECD국가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를 망라해도 최저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출산율이 낮은 북유럽 국가들도 우리나라 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해외에선 우리나라의 출생률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며, 한국은 이제 망했다고 하고, 장래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전망하고 있다.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았었는데 길지 않은 세월 동안 어떻게 이런 큰 변화가 생긴 것일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며칠 전 내가 8 - 90년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 같이 근무했던 후배 교사를 만났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학교의 근황으로 이어졌다. 

내가 근무할 때만 해도 한 학년에 10 학급이었고 한 학급당 학생수는 70명이었는데, 지금은 5개 학급으로 줄었고, 학급 학생수는 23명 내외라고 했다. 

학생수 감소는 자동적으로 교사들의 수도 줄여간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내가 몸담았었던 학교도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출생률이 높던 시절 우리나라의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대로변의 건물 중에는 소아과와 산부인과 의원들이 즐비했고, 몰려든 아이들과 임산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거리에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거나 품에 안고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거니는 여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족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는 손이 모자랄 정도로 아이들이 올망졸망 딸려 있었다. 

주택가 골목길에는 뛰어노는 아이들로 시장처럼 북적거렸고, 아파트 놀이터는 놀이기구마다 나무의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는 일몰 후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린이 대공원을 비롯한 놀이기구가 설치된 곳에는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면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기구를 타기 위하여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놀이기구 한 가지를 타기 위해 한두 시간 대기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은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맘 놓고 뛰어놀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로 빼곡했다. 

늘어나는 학생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학교에서는 저 학년들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을 실행했고, 심지어는 3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 출생률은 60년도에 6.16명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후, 70년도는 4.53 명, 80년에는 2.82명이었으며, 90년에 1.57명으로 점차 낮아졌다.

출산율을 낮추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곳)은 1961년 4월에 창립된 대한 가족계획 협회였다. 이곳에서는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산아제한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보건 사회부의 지원아래 각 시. 도립병원과 지역의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소를 설치했고, 빈민층에게 피임기구와 피임약을 무료로 제공했다. 가임부부를 대상으로  불임수술을 권장하여 응하는 사람들은 지정된 의료기관에 보내져 남자에게는 정관수술, 여자에게는 소파수술을 받게 했다.


대한 가족계획 협회에서는 방송을 통한 출산 억제 캠페인에 공을 들였으며 홍보 표어와 포스터를 제작하여 거리를 뒤덮을 정도로 게시했다. 그때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서 잘 키우자.  

딸 아들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 중. 후반부터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구호로 산아제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인구증가의 심각성에 대한 강연과 정관수술의 필요성을 설명한 후 희망하는 예비군들은 지정 병원에 보내져 수술을 받게 했고, 훈련 잔여시간을 면제해 주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서울 강남 개발과 더불어 아파트 청약의 열기가 달아올라 경쟁률이 치열해지자 정관수술자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혜택까지 주어졌다.

 

대한 가족계획 협회에서는 80년대 초에 극본을 공모했다. 출산율을 줄이기 위한 소재로 당선작은 드라마화해서 방송국 전파를 탄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극본 쓰는 것을 좋아했고 MBC 창사기념 극본공모에서 2년 연속 당선된 경험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응모를 했다. 

그때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서 인디언 기우제처럼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딸을 일곱 명이나 낳고 아들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출산율을 높이는 큰 원인 중엔 남아선호사상이 한몫했다. 내가 쓴 극본의 내용은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기른 아들한테서 버림받은 노부부가 천덕꾸러기로 성장한 딸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다분히 신파조의 내용이었다. 그때만 해도 극본 쓰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서 내 작품이 당선되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세 곳이나 있지만 언제나 적막강산이다. 마치 장식품으로 설치해 놓은 조형물 같다. 

같은 아파트에 1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단지 내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접한 주택가 골목길도 인적이 끊긴 절간처럼 고요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은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인데 신생아나 영아를 보는 것은 백주에 하늘에서 별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쩌다 젊은 커플이 유모차를 밀고 와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면 그 안에는 아기대신에 해맑은 얼굴을 한 강아지가 타고 있다.  


대한가족계획 협회는 1999년 대한 가족 보건복지 협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실질적으로 협회가 사라진 거나 다름없다. 

지금처럼 심각할 정도로 바닥에 떨어진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한 가족계획 협회가 필요한 게 아닐까(?) 불임이나 난임 부부를 정성껏 치료해 주고, 매스컴과 SNS를 통한 출생 장려 캠페인을 벌이고, 도시의 빌딩에 매달려 있는 전광판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홍보를 하고. 협회는 국가의 지원아래 젊은이들이 마음 편하게 결혼하고 자녀를 출생할 수 있도록 주택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자녀 교육비(사교육비)를 전액 지원해 주는 정책을 편다면 내려가기만 하던 출산율이 증가추세로 전환되지 않을까?







대문사진 : 대한 가족계획 협회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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