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준 Oct 18. 2022

아파트 경비원에 관한 추억



아파트 경비원의 수난시대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이 끊이질 않는다. 단지 경비원이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가 하면, 밤 2시를 넘긴 시간에 잠을 자고 있는 경비원을 찾아와 한가하게 잠이나 자느냐며 멱살을 잡고 흔드는 일까지 있단다. 어떤 만취한 주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경비초소에 찾아와 폭행을 가하기도 했단다.

얼마 전에 한 경비원이 장시간에 걸친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해 분신자살한 일도 있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 있었으면 소중한 생명까지 포기했을까?

이런 갑질은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찮은 일에도 삿대질하고 목청껏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폭행까지 한단다.

주민이 납부하는 관리비로 월급을 지급된다는 이유로 경비원들을 머슴이나 노예처럼 하찮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이며 이들의 월급은 정당한 노동에 대가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줄곧 해오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아파트도 몇 차례 바뀌었고, 여러 명의 경비원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방문자의 출입을 점검하고, 주변을 청결하게 해야 하며, 화단에 잡초 제거, 물을 뿌리는 일, 낙엽을 쓸고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하며 우편물을 관리하고 무단 침입이나 도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도 해야 하는 한편,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입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가 이른 아침 출근하며 자녀가 자고 있는데 좀 깨워서 학교에 보내달라, 크고 작은 물건을 맡기며 몇 호에 사는 아무개에게 전달해달라 이런 사적인 부탁을 해도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네를 부축해 주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기 엄마의 유모차를 들어주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입주민이 있으면 받아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옮겨주었다.

아파트 생활에서 제일 힘든 일은 주차와 출차의 문제였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들은 지하 주차장이 없어 지상을 이용해야 하는데 공간이 협소해 주차된 차량 앞에는 이중삼중으로 길게 주차를 해서 차를 빼려면 수십 대의 차를 움직여야 했다. 이럴 때마다 말없이 다가와 도움을 주는 건 경비원이었다. 꼭두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주차장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나는 자기 몸을 돌볼 틈 없이 입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경비원들이 고마워서 마주칠 때마다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고, 더운 여름엔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병 사 드시라고, 추울 땐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하시라고 작은 돈이지만 가끔씩 손에 쥐여주었고, 명절 때면 과일값에 보태라고 얄팍하지만 봉투를 건넸다. 

어린 두 딸애를 돌봐주기 위해 장모님이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나보다도 경비원들을 더 챙겼다. 마치 한 가족으로 생각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북한식 토속 음식을 자주 하셨는데 그때마다 음식을 정성껏 담아 경비원에게 전달했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수시로 건네기도 했다.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색다른 음식을 하면 경비원을 챙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부녀회서는 입주민에게 돈을 모아 경비의 생일이나 명절 때, 떡, 고깃값에 보태 쓰라고 건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경비원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현관 옆에 혹처럼 붙어있는 경비실을 아예 없애버렸다. 

내가 8년 전부터 살고 있는 아파트는 7개 동인데도 경비실이 2개뿐이다. 그나마도 하나는 정문에 있고, 아파트 단지 안에는 동과 동 사이에 조그만 섬처럼 덩그러니 떠있는 1개가 고작이다. 한 초소에 2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시스템이니 4명의 경비뿐이다.

경비원은 얼굴 보기도 힘들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는 날이나 볼 수 있는데, 국경일과 겹치면 2주에 한 번 볼 때도 있다.

그래도 불편한 점다. 지하 3층까지 주차장이 있어 주차공간이 남아돌고, 엘리베이터가 지하까지 내려와 센서가 감지해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갈 필요가 없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에 지금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곳은 근래에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라 좀 오래된 곳이 아닐까 짐작된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관리를 위해서는 경비원 수가 많을 테니까.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켜 놓았고 아파트의 풍경도 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지난날 아파트 생활의 따스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에 흐르던 훈훈한 정을. 

사라져 가는 정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생률, 그리고 대한 가족계획 협회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