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어졌지 한 동안 참 바쁘게 지냈거든
물론 잠시라도 너의 모습 잊어버린 적은 없지만
넌 어떠니 이제는 좀 익숙해졌니
그렇게도 가고 싶어 했던 그곳은 널 반겨주고 있겠지
(중략)
내가 있는 이곳의 바람 이 거리의 향기를
전해 줄 수 있을까 이 짧은 편지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너를 그리워하는 낯익은 얼굴들과 그 숨결을
게으른 내 편지가 너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감미로운 선율과 노랫말이 귀를 파고든다. 어느 부분에서는 속삭이는 듯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애절함이 절절하다. 박효신의 편지였다.
이 노래를 들으며 문득 오래전 유학생활을 했던 런던을 기억해 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국에서 하늘만 바라보아도 고국이 그리워져 시야가 흐려지던 때에 친구가 보내준 편지는 이 노랫말과 판박이였다. 마치 그 편지에 선율이 더해진 것 같았다.
편지의 힘은 강하다. 마력을 지녔다. 그때의 편지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물론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이 커져 눈앞이 더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친구와 나 사이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과 얼레의 실처럼 연결되어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편지는 위로이며 다독여주는 포옹이었다. 마음을 담은 편지는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반짝이는 별 같은 것이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엉터리 맞춤법에 삐뚤빼뚤 볼품없는 글씨로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국군 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썼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썼다.
고사리 손에 잔뜩 힘을 주어 연필을 쥐고 한 자 한 자 공을 들였다.
중. 고시절에는 친구 간에 편지를 주고받는 일로 확대되었다. 친한 친구와는 수시로 주고받았다. 만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우정을 영원히 하자는 상투적인 내용도 있었고, 생활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쓰기도 했고,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속 깊은 것들을 꺼내어 쓰기도 했다.
펜팔이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사람들과 편지를 교환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도 열심히 했다.
군대생활의 고단함 속에서도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새장 속의 갇혀 지내던 새가 창공을 나는 것처럼 자유로운 세계를 만나는 나만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해외 여행길에도 편지 쓰기는 계속되었다.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예쁜 그림엽서에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며 우체국 안 테이블 앞에 서서 쓰기도 했고, 역사적인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돌계단에 앉아서 쓰기도 했으며, 고운 햇살 속에 푸른 미소를 머금은 공원의 잔디밭에서 쓰기도 했다.
바쁜 여행일정 속에서도 비록 엽서이긴 하지만 소식을 적어 보내는 것은, 그들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어서 항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증표 같은 것이기도 했고, 멀리 떨어진 여행지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생활의 일부였던 편지를 잊고 살고 있다.
실로 오랫동안 편지를 쓴 적도 받은 적도 없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짙은 안개가 낀 창밖을 내다보듯이 기억이 희뿌옇다. 시간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기억의 실마리가 잡힌다. 뉴 밀레니엄을 한 해 앞두고 공부하러 갔던 런던에서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1993년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고, 90년대 후반 개인에게 무료 이메일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하면서부터 편지를 쓰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채워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안부나 소식, 용무는 전화나 문자메시지, 이메일에 매달린다. 단톡방을 만들어 채팅을 하기도 한다.
외국 여행 중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가족이나 친구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영상통화를 하고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만들어 전송한다.
오래전이지만 지인들은 내 필체를 보고 단정하고 보기 좋다고 말했다. 아마도 편지를 많이 썼던 결과라 생각한다.
편지는 오롯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그 사람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적어 나가는 사랑을 담는 행위이다. 편지에는 마음이 녹아들고 숨결이 배여지게 마련이다.
이런 정성을 다하는 편지 쓰기의 반복은 글씨체뿐만 아니라 문장 표현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 정치인이 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남긴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씨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한글을 깨친 게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볼품없었고, 짧은 문장인데 맞춤법이 틀린 것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하나 어디 그런 사람이 그 한 사람뿐이겠는가. 컴퓨터와 휴대폰의 자판에만 의존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패인 것을.
나는 그 정치인의 방명록 글을 보면서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의 절실함을 느꼈다. 글씨 교본을 이용하여 연습하기, 받아쓰기, 일기 쓰기, 편지 쓰기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편지 쓰기 일 것이다. 일기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자신만 보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기에 편지보다는 공을 들이는 것이 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휴대폰과 컴퓨터의 자판만 두들기다가 나중에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불구(?)의 손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편리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지금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서 살 수야 없겠지만, 정겹고 삶의 향기를 주는 편지마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씁쓰름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