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중 화장실들을 보면 사용하는 곳이 아니라 전시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 시설이나 청결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실내 공간을 이용하여 꽃과 나무를 심어 마치 온실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는 곳도 있고, 수족관을 설치해 관상용 물고기들이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분수를 설치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자연채광을 그대로 받아들여 햇살이 조명처럼 쏟아져 내리는 곳도 있다. 소변기가 설치된 벽면엔 작은 그림들이 눈높이에 맞게 걸려있기도 하고, 유명한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가 그림과 함께 곁들여 걸려있기도 하다. 어떤 곳은 삶의 지혜, 길잡이가 되어 줄 만한 명언들이 걸려있어 마음까지 정화시켜 준다. 은은하게 파도처럼 일렁이는 클래식 선율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꽃 향기가 코를 즐겁게 하는 곳도 있다.
편의 시설도 작은 것까지 꼼꼼히 갖추어져 있다. 화장실 이용을 알리는 표시등, 화장실 내부에는 휴대폰 비치 대, 가방걸이, 옷걸이, 일회용 변기 깔개 시트나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세면대에는 냉. 온수 시설이 되어있고, 거품 비누 기구가 설치되었으며, 대형 거울이 있어 얼굴이나 옷매무새를 확인할 수 있다. 건조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은 금세 손의 물기를 말려준다.
아주 오래전에는 공중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이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는 실험대 같았다.
바닥에 아무렇게 버려진 휴지, 담배꽁초, 여기저기 뱉어 놓은 가래침, 달라붙은 껌 자국, 비위를 상하게 하는 불쾌한 냄새, 게다가 물탱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변기 안에 수북이 쌓인 배설물, 문짝이며 벽에 어지럽도록 가득 찬 낙서와 음화들.....
특히 재래식 화장실은 최악이었다 악취가 코를 찔러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눈까지 따가웠다. 불편하게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볼라 치면 오물이 튕겨 엉덩이에 묻기도 했다. 아래 변기통을 내려다보면 더러운 똥 덩이 위에 구더기가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
나는 60년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눈앞의 현실처럼 선명하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낡은 학교 건물, 복도나 교실을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에서 삐걱거리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 봄이면 자주 안개가 덮던 학교 뒷산, 운동장에 서있던 수령이 오래된 홰 나무, 학교 건물 뒤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화장실…..
학교는 괴기한 소문이 많았다. 홰나무에는 머지않아 용이 될 머리에 뿔 달린 구렁이가 살고 있고,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사람을 죽여 묻었던 곳에 터를 닦아 세운 학교라서 귀신이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어느 봄날 방과 후였다. 고목이 되어 속이 비어 있는 홰나무에 구렁이가 나타났다.
거대한 구렁이는 한참 동안 나무줄기를 타고 서서히 움직이다가 텅 빈 나무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은 공포감에 입을 벌리고 그저 머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지켜보기만 했다.
머리에 뿔이 달린 구렁이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장차 용이 될 구렁이가 홰나무에 살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필시 귀신도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귀신을 쫓는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홰나무가 운동장에 떡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에 귀신들은 학교 건물 뒤 켠에 있는 화장실에 숨어 산다고 했다.
귀신을 정면으로 보았다는 아이도 있었고, 엉덩이를 내놓고 볼일을 보고 있는데 아래에서 귀신의 손이 갑자기 올라와서 졸도한 아이도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뒷산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내려와 학교 주위를 휘감아 자욱할 때, 먹구름이 드리워 낮에도 밤처럼 어둑어둑한 날은 화장실에 가는 것이 극도로 싫었다. 아니 죽기보다 더 싫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화장실에 나 이외에 아무도 없을 때는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등골이 오싹해져 볼일을 끝내는 둥 마는 둥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뛰쳐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수업 중에 갑자기 교실 안에 구린내가 진동했다. 아이들은 코를 막고 창문을 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내가 앉은자리 가까이에 겁이 많고 얌전한 여자 같이 생긴 아이가 의자에 앉은 채로 똥을 싼 것이다. 그 아이는 당황함과 창피함으로 얼굴이 벌게져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 속옷을 벗겨 대충 정리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얌전한 아이가 똥을 싼 이유는 뻔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워 참고 참다가 끝내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때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친구 몇 명과 배낭을 꾸려 훌쩍 여행을 떠났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바다로 산으로 신나게 돌아다녔다.
전라남도에 위치한 어느 높지 않은 산을 타려고 입구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갑자기 배가 아프더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둘러보니 단아한 암자가 있었고, 마당 한편에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급한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순간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숨을 멎게 만들었다. 게다가 파리떼가 새까맣게 날고 있었다. 도저히 일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뒷걸음질 쳐 나와 숲 속으로 달려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쪼그리고 앉았다. 주위엔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했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신선한 바람이 상쾌하게 얼굴에 부딪쳤다. 천상의 화장실이었다. 기분 좋게 볼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주위가 물속처럼 적막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을 게다. 이상한 느낌에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꽤 굵고 긴 뱀이 바로 내 뒤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으악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튕겨져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바지도 추슬러 입지 않은 채였다. 기절초풍, 혼비백산 바로 그런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중 화장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88 서울 올림픽 때 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개선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였다. 불과 20여 년 전 일이다. 그 길지 않은 시간에 검은색을 흰색으로 바꾸어 놓는 마술과도 같은 변화로 지금은 세계에서도 가장 시설이 훌륭하고 쾌적한 공중화장실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앞으로 공중화장실은 어떻게 변할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