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재래시장 입구에 계절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80을 훨씬 넘겼을 연로한 분이시다. 흐트러진 흰머리와 밭고랑만큼이나 패인 얼굴 주름, 그리고 거칠고 무딘 두 손이 고단한 삶을 살아온 흔적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할머니는 집에서 재배한 듯한 자질구레한 야채와 계절에 따른 나물을 올망졸망 늘어놓고 팔고 있다. 봄에는 쑥, 달래, 냉이, 두릅, 고사리, 여름에는 오이, 애호박, 마늘종, 머위대, 토란, 가을에는 고구마 줄기, 가지, 생강, 더덕, 겨울에는 무청 시래기, 다양한 마른 나물 등이 등장하여 계절의 흐름을 알려 준다.
할머니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온종일 땅바닥에 앉아서 채소를 다듬고 마늘을 까느라 잠시도 쉬는 적이 없다. 만사가 귀찮은 고령임에도 피곤한 기색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가끔 할머니한테 야채와 나물을 사곤 한다. 할머니는 받을 금액만 알려주고는 일체 다른 말이 없다. 고맙다. 또 오라는 말 한마디 없다.
아내도 깐 마늘이나 쪽파, 애호박 같은 것을 사곤 하는데 노인네 답지 않게 잔 정도 없고 무뚝뚝하다고 불평을 털어놓기도 한다. 강인함이 노인네에 대한 연민을 묻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할머니 옆엔 할아버지가 그림자처럼 붙어 일을 도와주고 있다. 아마도 농사일이 없는 날은 함께 있는 듯싶었다. 할아버지는 더 연로하시고 등이 활처럼 굽어 보기에도 불편해 보인다. 시력이 나쁜 데다가 손목에 힘이 없어서인지 일이 굼떴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처음엔 의견 충돌로 화가 나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거려니 했다. 그러나 얼굴 표정을 보면 그런 게 아니었다. 하기야 그들은 대화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짐작하건대 60년 이상을 함께 해로해 왔을 터이니 마음으로 눈빛으로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볼 때면 고목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온갖 고통과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이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
그들이 지금까지 헤쳐온 풍랑은 얼마나 높고 거친 것이었을까? 그들이 넘고 넘었을 산들은 얼마나 높고 험준한 것이었을까? 얼마나 좌절하고 인내하며 고통에 몸부림쳤을까? 인고의 세월을 무난히 항해해 닻을 내린 노부부에게선 고목의 향기가 풍긴다. 산뜻하고 매혹적인 것이 아닌 이끼나 낙엽 같은 자연, 고향의 냄새……
영국 유학 시절 내가 살던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91세의 노인이었는데 백발에 곱게 늙으신 분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셨다. 그것도 버스를 이용했는데 오르고 내리려면 여간 힘들어하는 게 아니었다. 운전기사가 출입문 발판을 최대한 낮추어 주는데도 차에 오르려면 안간힘을 쓰며 가까스로 올라타셨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난 시간이 있을 때면 내 차로 할머니를 요양원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다. 몸이 불편하신데 왜 매일 요양원을 찾으시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영감이 외롭게 혼자 누워 계신데 말벗이라도 해 주어야지. 팔다리를 주물러드려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죄지은 것처럼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라고 하셨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데 무슨 힘이 할머니를 이토록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난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걱정되었다. 차를 타고 내리시다 다치시지 나 않을까? 길에서 미끄러져 뼈라도 다치시지 않을까? 늙어서도 부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 인가를 그때 절실히 느꼈었다. 그리고 노부부가 건강하게 함께할 때 고목의 향기가 풍긴다는 것도.
요즘 들어 할아버지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그러나 할머니가 매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우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할아버지가 건강해서 할머니가 일 년 후, 이년 후 아니 10년 후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계절을 날라다 주기를 바란다. 고목의 향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