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궁한 세상을 살기 때문일까? 하찮은 것에도 감동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에 사과 한 상자를 택배로 받았다. 15kg 짜리였다.
냉장고 과일 박스에 보관하기 위하여 사과 상자를 오픈했다.
사과는 3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일 상단의 것을 보니 알도 굵고 때깔도 좋아 한눈에 보기에도 상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이어서 머리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집어넣었다.
스티로폼을 들어내자, 중간층 사과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상단에 있던 것보다 더 알이 굵고 좋았다.
머리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상단 것보다 알이작고, 때깔도 좀 떨어져야 하는 게 옳다.
혹시 하단에 엉터리들(상품 가치가 없는 것)을 몰아서 넣은 것은 아닐까?
나는 우려하며 스티로폼을 거둬냈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단에는 중간보다 더 크고 때깔이 좋은, 흠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훌륭한 사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과를 수도 없이 과일가게에서 사기도 했고. 택배로 주문하기도 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사과 상자는 으레 상단에는 좋은 것, 중간에는 괜찮은 것. 하단에는 그저 그런 것이나 형편없는 것들로 채워지는 게 공식 같은 관행이었다. 심지어는 어느 때는 하단에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이나 썩은 것으로 끼워 넣은 적도 있었다.
이런 예는 비단 사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들도 마찬가지다.
작년 9월에는 포도를 택배로 받았는데, 아래쪽에는 송이가 작고 물러서 먹을 수 조차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고, 며칠 전에 받은 감귤은 아래쪽에 무른 것, 곰팡이가 핀 것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너무나 자주 겪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간 주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극히 정상적인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는 조금은 씁쓸한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