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등산길에 된통 고생했던 적이 있다. 등에 멘 배낭 때문이었다. 그다지 무겁지 않아 이 정도면 무리 없겠다 싶어 출발했는데, 웬걸 몇 십분 걸으니까 발을 옮길 때마다 무게가 가중되기 시작했다. 배낭 안에 물건들이 돌덩이로 변하나 싶더니, 끝내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배낭 안에 들어있는 과일, 음료수 등을 꺼내어 알지도 못하는 등산객에게 선심을 써야만 했다.
산티아고 성지 순례에 나섰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길을 나서기 전에 하는 일이 물건을 버리는 것이었다 한다. 심지어는 가벼운 속옷까지도 버렸다한다. 800Km나 되는 장거리에 가파른 언덕길을 수도 없이 오르고 내려야 하며, 한 달 가까이 걸어야 하니, 짐의 무게가 우리한테 주는 고통이 얼마만 한 것인지 짐작케 해준다.
나는 가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짐은 씹던 껌 뱉어 버리듯 쉽게 하면서, 과연 마음속에 욕심은 얼마만큼 버리고 살고 있나? 그럴 때면 난 수치심으로 얼굴이 불에 된 듯 화끈거린다. 가진 게 넉넉지 않아 아직까지 이렇다 할 큰 기부는 해보지도 못했지만, 작은 기부를 할 때도 아까운 생각에 선뜻 내놓질 못한다.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 모금 전시회에 참여하면서도 대형 작품을 기증하지 못하고 재고 재다가 끝내는 소품을 내놓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인들이 다양한 소외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서 앞다투어 기부한다. 그렇지만 정말 가슴 찡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런 돈 많은 사람들의 기부가 아니다. 시장에서 젓갈을 팔아 평생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을 도와달라고 기부한 할머니. 김밥을 팔아 혹은 행상으로 벌어들인 돈을 불우한 학생을 위해 써달라고 대학에 기탁하는 사람, 폐품을 하나 둘 모아 판 돈을 내놓는 할아버지. 최소한의 생활 보조금을 수령하면서도 그 돈을 아껴 선뜻 기부하는 사람들, 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하며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후원자 …….
그들의 생활을 보면 옹색한 단칸방 전셋집에 살거나, 창문도 없는 고시원 혹은 쪽방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화장지도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꾸깃꾸깃한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다시 꺼내 쓰고,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주스 한 잔 마시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이쑤시개를 여러 개로 조각내어 사용하기도 하고, 한 푼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 좋아하던 술 담배를 끊기도 했다. 어떤 이는 손 씻은 물을 모아 재활용하면서 절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재산을 내놓는다.
우린 그런 나눔에 감동하고 그들의 멋진 삶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존경한다.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그것이 누구나 바라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이리라. 욕심 버리기, 나눔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