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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24. 2022

가지 않은 길                       





지난 일을 뒤돌아 볼 때 꼭 후회하게 되는 것이 있다. 두 갈래 길에서 한 곳을 선택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이다.

특히 여행을 마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A라는 곳을 포기하고 B라는 곳을 갔어야 했는데 하는..... 그러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사뭇 궁금해진다. 그곳엔 뭐가 있었을까? 볼거리가 더 많고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더 멋진 경험을 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옷을 사고도 마찬가지다. 두 개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하나를 선택해 잘 입고 다니다, 어느 날 문득 싫증 나면서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때 그 옷을 샀어야 했어. 그 색이 한결 세련되고 유행타지 않을 디자인이었어…. 

컴퓨터를 사고도 휴대폰을 사고도, 아니 어떤 물건을 사던 결과는 매 한 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진학을 앞두고 두 갈래 길에서 고민했던 적이 있다. 미술을 전공할까 아니면 문학을 전공할까 하는 것이었다. 하얀 캔버스에 마음껏 붓을 휘둘러 다양한 색깔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던지, 멋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내 모습을 그려볼 때면 ‘그래 바로 이거야. 결정했어. 화가가 되는 거야.’ 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감동과 잔잔한 여운을 주는 글을 읽을 때면 ‘나도 글을 쓸 거야.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줄 맛깔난 글을 쓸 거야.’ 이렇게 생각이 또 바뀌었다. 

선생님과의 상담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은 당연히 미술을 전공해야 한다 하셨고, 작문 선생님은 문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 채 표류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원서를 제출할 때, 나는 미술을 선택했다. 그동안 두 마리의 토끼 때문에 갈팡질팡 했는데, 이제 한 마리는 포기했으니 남아있는 것만 열심히 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이 시작되고 채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서 문학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강도가 심해지며 대학생활 내내 괴롭혔다. 

새해가 되면 각 신문마다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글과 인터뷰를 보며 그들을 부러워했고, 나도 문학을 전공했으면 저런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심란해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아쉬움으로 항상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림에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하여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에서 7년 동안 체류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고, 숱한 갤러리와 미술관을 순례하고, 전시를 하고…… 나름대로 바쁜 시간이었다. 이쯤이면 문학이라는 싹이 돋아나오지 못하게 땅이 단단하게 다져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머리를 쳐든다. 그런 걸 보면 문학의 싹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똬리를 틀고 있는지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때 두 갈래 길에서 문학의 길을 선택했어야 했어. 아직까지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것을 보면 그 열정이 엄청난 것이었어. 그 길을 차근차근히 걸어왔더라면 지금쯤 박수받는 작가가 되어 있을 거야. 아마도 지금 잘 나가는 작가 K 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이란 시가 있다. 그 시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먼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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