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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8. 2022

가난한 작가, 그리고 미술품 컬렉터


                                                                                  
얼마 전에 내가 아끼는 젊은 작가가 개인전을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10여 년 동안 공부하며 열심히 작업한 작가이다. 외국에서 몇 차례 개인전을 가졌지만 한국에서는 처음이었다. 작가는 오랫동안 작품에 심혈을 쏟아왔고,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을 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리라 기대했다. 

귀국해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작가에게 갤러리 대관료, 팸플릿 제작비, 액자 비용은 부담스러웠지만 지출한 경비야 작품이 팔려 회수할 수 있겠지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작품이 특이하다. 실험적이다. 예술성이 뛰어나다. 긍정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작품이 전혀 팔리지 않은 것이다. 전시비용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고스란히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가진 자에게는 천오백여 만 원은 하찮은 돈일 수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 작가에겐 버거운 액수였다. 

 

전시를 끝내고 전화가 왔다. 허탈하고 착잡하다고 했다. 한동안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가 겪은 심적인 충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기는 얼마나 저하됐을까? 아마도 건너야 할 다리가 갑자기 붕괴된 것처럼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비단 그 젊은 작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주일 단위로 무수한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이 겪는 과정이다. 어느 가난한 예술가는 첫 번째 전시를 하기 위해 집을 팔아 작은 곳으로 옮겼고, 다음 전시하고는 전세로, 그다음엔 더 작은 집 전세로, 그다음은 월세로 옮겼다고 머리를 무겁게 저으며 하소연했다.  


십수 년 동안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오고 있다. 아트 페어, 옥션에는 컬렉터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작품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몇 억, 몇 십억짜리가 빈번히 거래되고 있다. 몇몇 갤러리에서는 전시 오픈 전에 작품이 다 팔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컬렉터들은 작가에게 선불을 주고 작품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여전히 가난하다.  컬렉터들이 투자 가치가 있는 검증된 블루칩 작가의 작품만 사들이기 때문이다. 돈이 될만한 작품이 있으면 보지도 않고 사들이고 포장도 풀지 않은 채 값이 오르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런 컬렉터들이 있어 미술계를 발전시키고 우리나라 위상을 높이는 긍정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컬렉터들이 등장하여 젊은 작가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더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 미술의 전망을 밝게 해 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미술 애호가가 있다. 50대 초반의 여교사이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방 세 개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이다. 생활비를 절약하고 돈이 모이면 그림을 산다. 감히 원로나 중견작가의 작품 매입은 엄두도 못 낸다. 젊은 작가나 인지도가 낮아 저평가된 작가들의 작품 위주다. 30대 초반부터 한 점 한 점 구입한 작품이 이제 30여 점이 된다. 다 합쳐야 블루칩 작가들의 한 점 값도 안 되는 액수다. 그러나 그녀는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그림들을 거실에 걸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감상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괴로움이나 슬픔도 눈 녹듯 사라지고 상상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것이었다.  


외줄에 매달린 사람처럼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작업에만 전념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활고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애써 떨구어 내며 오직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가는 가난한 예술가들, 누가 작품을 한 점이라도 사준다면 그들은 자신의 작품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힘을 얻게 될 것이고 희망의 끈을 당차게 거머쥘 것이다. 축 처진 가난한 작가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용기를 심어줄 컬렉터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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