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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8. 2022

겉치레하는 사람, 속치레 하는 ​사람


몇 해 전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할 때이다. 한 지인이 여인 한 명을 데리고 전시장을 찾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50대 초반의 여인은 화려한 의상, 고급스러운 액세서리, 가방..... 명품을 갑옷처럼 중무장하고 있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부의 상징인 강남의 한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산다고 했다.

여인은 전시된 작품을 대충 훑어보고는 중앙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에 들고 있던 벤츠 로고가 선명한 자동차 키를 옆에 나란히 놓았다.

여인은 얼마 전에 프랑스 파리 여행을 하면서 쇼핑한 이야기며, 다이어를 사기 위해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들렸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야 너 돈도 많은데 전시장에 왔으니 작품 한점 찍고 가라."

지인이 여인에게 은근히 작품을 사라고 권유했다. 전시장에 데려온 것도 작품 한 점이라도 팔아주고 싶은 계산이었으리라.

"작품 멋지네. 저런 큰 작품들 거실에 걸어놓으면 분위기가 살겠는걸."

"맞아, 아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일 거야."

지인이 맞장구를 쳤다.

여인은 작품값을 물었다.

판화기 때문에 백만 원 안쪽의 작품들이 대부분이고, 대형 작품이라도 200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어머머 그림값 너무 비싸다."

"?"

충격이었다.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하느라 수천만 원을 투자했을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 난 태어나서 그림은 딱 한번 사봤어, 4만 원 주고."

"야 그런 게 어딨어?"

"왜 없어. 시장 가봐. 거울 가게에 가면 수두룩해."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나 여고 때 엄마 따라 시장 가서"


다른 40대 초반(?)의 한 여인은 전시 기간 중 세 번이나 전시장을 찾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들렀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올 때마다 처음 대하는 작품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꼼꼼히 감상하곤 했다.

전시 마지막 전날,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작품을 한 점 소장하고 싶다고 했다. 옷차림은 너무나 평범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액세서리 하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림을 살만한 형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림을 사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십수 년 전부터 한점 한 점 사들인 작품이 삼십여 점 가까이 된다고 했다. 비싼 작가들의 작품은 엄두도 못 내지만, 전시장을 돌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꼭 사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거실에 걸린 작품을 감상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겉치레를 열심히 하는 삶,

속치레를 열심히 하는 삶,

과연 어떤 삶이 멋진 것일까?

글쎄.....

그러나 겉치레만큼 속치레도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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