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어머니
구본웅, 푸른 머리의 여인, 캔버스에 오일, 60.4 ×40.4cm, 1940년대, 리움미술관 소장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시진 꺼내 들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구본웅, 여인상, 나무에 오일, 23 × 15cm, 1940년대, 개인 소장
오래전 TV 프로 중에 국군 위문 공연인 우정의 무대가 있었는데, 그리운 어머니(?) 코너 때면, 군인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미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엄마를 그리는 마음이 간절한 애틋한 노래였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
어머니가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천국을 여행하고 있어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구본웅,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얼굴을 채 머릿속에 담아두기도 전인 두 살 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두 살 때 가정부의 등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 때문에 척추장애를 입어 평생을 불구(꼽추)로 살아야 했다.
구본웅, 여인상, 1930년대
불구의 몸으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면,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와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빛바랜 사진첩에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서양화가 구본웅은 한국 화단에서 독특한 인물로 꼽힌다. 서양의 야수파 화풍을 처음 받아들인 화가이다. 그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색채를 배제하고 앙리 마티스나 앙드레 드레인처럼 강렬한 그림을 그렸다.
안타깝게도 그가 남긴 그림들은 6.25 때 폭격을 맞아 대부분 소실되었다. 국립 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많지는 않다.
몸이 쇠약했던 구본웅은 급성 폐렴으로 47세에 타계하기 전까지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리고 또 그렸다. 단아한 모습, 조금은 슬퍼 보이는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을........
여인들의 초상에 집착했던 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본웅, 여인상, 제작연대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