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볼 때,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조금은 실망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대가들의 작품들처럼 사물을 충실히 그린 것도 아니고, 고뇌한 흔적도 없이 쉽게 쉽게 제작된 것 같기 때문이다.
Jackson Pollck, Mural, 1943, Oil and Casein on canvas, 242.9 x 603.9, University of Iowa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물감을 가지고 놀이를 하던 것을 떠올린다.
종이를 바닥에 깔아놓고 붓에 물감을 묻혀 떨어뜨리거나 뿌려서 다양한 물감의 흔적을 만들어 내던.....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잭슨 폴록의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Noon, Lee Krasner, 1947
잭슨 폴록은 기존의 틀에 박힌 표현 방법에서 벗어나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붓에 물감을 묻혀 떨어뜨리거나 뿌리고 때로는 끼어 얹거나 쏟아부어 작품을 표현하는 드리핑(Dripping) 기법을 사용했다.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붓을 사용하면서 살짝살짝 뿌리기도 하고, 힘차게 뿌려 다양한 흔적이나 궤적을 만들어 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던 미국에서 가장 취약한 것은 예술 분야였다. 유럽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미국은 현대미술만큼은 중심지가 되고 싶었다.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했다.
새로운 방법으로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던 잭슨 폴록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거기에다 페기 구겐하임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잭슨 폴록은 미술계의 대 스타가 되고, 미술 후진국이었던 미국을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는 발판을 만들었다.
잭슨 폴록,
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새로운 표현 방법과 시대상황에 맞물려 돈과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술에 절어 살았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그런 것들을 잊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 치는 액션페인팅을 받아들여 작품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