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를 말없이 기어가는
한 줄기 분홍빛 지렁이,
바람 한 점에도 짓눌리고 찢기면서도
울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상처는 속에다 숨긴채
말랑한 몸뚱이를
조금씩 잘라가며
세상에 익숙해진다.
나는 몰랐다.
늘 땅을 지나는 너의 눈이
하늘을 본 적 없다는 걸.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듯한 그 몸에
수천 번의 발자국이 지나갔다는 걸.
그러고도 너는
묵묵히 길을 만들고 있었구나.
너를 밟고 지나간 아이들이
흙을 덜어내고 웃는 동안에도.
이제 알겠다.
상처는 피가 아니고,
눈물도 아니라는 걸.
흙에 섞여 아무도 모르게
스며드는 너를 보며 배웠다.
너는 울지 않아도
충분히 아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