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현실은 나만 모른 척한다
직장인들로 한번 휘몰아친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장님에게는 괜히 미안할 정도로 한가하다.
6:35분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렸고, 다음 아르바이트 근무자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오늘 많이 바쁘셨어요?”
교대시간은 6:30분이다. 다음 근무자가 5분 정도 늦어,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죄송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왜 매번 죄송할 짓을 하는 건지 의아함만 들었다.
“네 괜찮았어요”
다음 근무자는 앞치마를 메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 사장님 오늘 약속이 있으셔서 나가셨고, 아마 조금 이따가 오실 거예요”
“아! 그렇구나”
5분의 마음에 짐을 전 근무자인 내가 아닌 사장님에게 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가볼게요, 고생하세요”
“네 수고하셨어요”
간단한 인수인계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며, 영준이에게 왔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일곱 시 삼겹천하”
내가 방금 나온 카페 근처에 있는 삼겹살 집이다.
자기 직장 근처도, 집 근처도 아니고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 근처로 약속 장소를 잡아 준 녀석.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가 부담스럽지 않은, 몇 안 되는 내 주변 사람들 중 하나 김영준.
이 녀석과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중학교 2학년부터다.
가게 앞에 도착하여 안을 들여다보니, 아직 영준이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6:50분이었다.
“너 아직도 혼자 가게 못 들어가냐?”
영준이었다.
“나도 방금 와서 너 있나 없나 본 거야”
우리 둘은 가게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영준이 대답했다.
“뭘로 드릴까?”
“저희 음.. 삼겹살 3인분 하고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주세요” 다시 영준이 대답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같이 있지만 늘 선택권을 넘겨받은 사람 영준이었다.
나에게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선택권을 넘겨받아,
작든 크든 늘 우리를 위한 선택을 해준 영준이에게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
밑반찬부터 시작해서 주문했던 술이 먼저 나왔다. 나는 소주와 맥주를 따서 맥주잔에 적당히 섞어 영준이에게 건넸다.
“카페 아르바이트 할만해? 예쁜 사람 많이 오냐?”
“예쁜 사람도 오긴 오지”
영준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번호 물어봤어?”
나는 대답대신 잔을 들어 영준이의 잔에 살짝 부딪히고는 매우 목이 말랐던 사람처럼 단숨에 들이켰다.
“하긴 네 성격에 번호는 무슨, 남자는 자신감이야 새꺄”
나는 입가를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자신감이 어떻게 있겠냐”
영준도 내가 따라준 잔의 술을 한 번에 들이켜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좀 전의 흥미로운 표정은 없어져 있었다.
“취업은? 어디 이력서 넣은 데 있어?”
“어제 한 군데 넣어 놨는데 아직 발표는 좀 남았어”
주문했던 삼겹살이 나오고 영준은 집게로 삼겹살을 들어 달궈진 불판 위에 올렸다.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을 보고 있자니, 이제 곧 내가 영준이에게 저렇게 달궈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군데 넣어서 되냐? 일단 여기저기 다 넣어 봐야지”
“그래도 잘 보고..”
“너 그거 신중한 게 아니고 게으른 거야, 너도 알지?”
아직 덜 익은 삼겹살을 가위로 자르며 영준이는 내 말도 함께 잘라버렸다.
하나였던 삼겹살이 여러 토막으로 잘려 더 세세하게, 이곳저곳 구워지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이곳저곳 영준에게 구워질 위기였다
“내가 네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알바만 할래?, 너희 어머니도 좀 쉬게 해 드려야지
영준은 그 뒤에도 나도 알고 있지만 피하려 했던 현실적인 말들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나의 상황과 내 나이 대 사람들 과의 비교부터 시작해 취업 지원 센터, 자격증 등 사실 다 맞는 말인 것도 맞지만 기피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 보게 해주는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앉은 영준이라,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녀석이 해주는 말들은 진심으로 날 위하는 말이라는 걸 내가 알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실컷 나에 대한 현실을 쏟아내던 영준은 나의 잔에 술을 따라 줌으로써 본인의 말을 끝맺음 지었다.
“아무튼 정신 차리라고” 영준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그래야지, 항상 짜증 나게 해 줘서 고마워”
“내가 그 맛에 살 잖아”
나와 영준은 술잔을 부딪히며 웃었다.
그 이후로는 또래 친구들끼리 할 만한 온갖 주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축구, 연예인, 여자, 옛날 얘기 등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재밌는 느낌이다. 저녁 식사가 얼추 마무리되자, 영준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나도 뒤 따라 일어나 따라 나갔다.
“잘 먹었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
“그럼 다음은 이 옆에 소고기 집으로 가자”
영준은 그 길로 돌아서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나는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밝았던 식당과는 다르게 길은 어두워져 있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친구가 없으니 나는 혼자가 되었고, 현실을 잊게 해 줬던 시간이 지나니 나는 다시 현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술기운이 올랐던 탓인지, 갑자기 든 막연한 현실감에 두려워서 인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영준이의 말이 맞다.
“그래 내가 게으른 거지, 용기도 없는 거고”
Ai 회사 추천 카테고리에 들어가 손가락에 눌리는 대로 지원 신청을 눌렀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의 현실은 나만 모른 척한다는 사실을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지독한 시선으로 나의 현실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는 사실 누구보다 더 처참하게 나의 현실을 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엄마를 마주할, 나의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집 주위를 한 바퀴 더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