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들지 않는 쥐구멍
알람 소리 없이 스스로 눈을 떴다.
잠을 푹 잤다거나, 내가 부지런한 건 아니고 이런 날은 보통 아르바이트에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장을 껌벅껌벅 쳐다보고 있다가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의 힘을 빌려, 이곳저곳 손가락이 닿는 대로 입사 지원을 마구 눌렀던 기억이 났다.
사랑했던 전 여자친구나, 사이가 멀어졌던 옛 친구에게 술김에 연락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따지고 보면 나의 정체도 모르는 여러 회사들에게 술주정을 부린 것 같았다.
취직사이트와 나의 메일함, 문자 메시지까지 들어가 봤지만 아직 연락 온 회사는 없었다. 내심 씁쓸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거 보니 술이 확실히 깼나 보다.
용기도 없고 게으른 나.
나는 다시 내가 됐다.
핸드폰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는 역시 일을 나갔고 집은 외롭게 조용했다.
내가 어제 영준이를 만나 재밌게 먹고 놀 동안 집은 더 외로웠을 것이고 엄마는 혼자 그 외로움을 감당했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엄마의 방문을 열어보니 어제 엄마가 혼자였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집 청소라도 해 놓을까?”
엄마를 위한 효도가 이게 최선이 아님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혼자 일을 하고 오는 엄마를, 아니 그런 엄마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죄책감을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산 저가형 무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레를 빨아 바닥과 TV 위 먼지가 쌓일 만한 곳 이곳저곳을 닦았다.
청소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었다. 습관처럼 취업사이트를 한번 들어가, 새로운 채용 공고를 눈으로 한번 훑고 난 뒤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내 현실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는 현실적인 것은 보고 싶지 않아 진다.
현실적인 영화나 드라마 할 거 없이 심지어 예능까지도.
그래서 나는 요즘 항상 스포츠나, SF 장르를 자주 본다.
나의 현실과는 아예 공감할 수 없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들…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광고 건너뛰기에서 멈춰 있는 영상.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곧 엄마가 집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최소한 자다가 일어난 모습만은 보여드리지 않기 위해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손으로 다듬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들어왔다.
“점심은 먹었어?”
일부러 밝게 내려는 목소리에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지만, 나는 별 다른 질문은 하지 못했다.
“아니 별로 배가 안 고파서”
“그럼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단 말이야? 얼른 저녁 먹어야겠네”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엄마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고단해 보였다.
“엄마 그냥 오늘은 뭐 시켜 먹을까?”
닫힌 방문에 대고 나는 소리쳤다.
“그래 엄마도 피곤하네, 너 먹고 싶은 걸로 시켜!”
나는 배달 어플에 들어가 메뉴를 살펴보다가 삼겹살 구이를 찾아봤다. 어제 먹은 삼겹살이 또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밖에 나가서 혼자 맛있는 걸 먹고 들어오는 날이 있으면 엄마한테 미안해서 엄마도 먹여드리고 싶었다.
“삼겹살 시켜 먹을까?”
엄마가 방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에이 삼겹살은 직접 구워 먹어야 맛있지, 삼겹살 먹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닌데 딱히 먹을 게 없네”
“그럼 그냥 중국집에서 시켜서 먹고 말까?”
“그래 그럼 엄마 뭐?”
“엄마는 짬뽕”
“그럼 짜장 짬뽕 탕수육 세트로 시켜야겠다”
“그래 네가 시켜 엄마가 돈 줄게”
“됐어 그냥 내가 시킬게”
배달 음식이 도착할 동안 엄마는 화장실로 들어가 씻으셨고 나는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배달음식은 도착했고 엄마는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 도착했는데 멀었어?”
욕실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욕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엄마 음식 도착했어”
“이제 나갈 테니까 먹고 있어”
나는 식탁에 음식들을 꺼내 놓고 먹기 좋게 비닐 포장들을 뜯어 놓았다. 엄마가 욕실에서 나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짜장면을 꼼꼼히 비빈 뒤 한 입 가득 밀어 넣고는 엄마를 슬쩍 쳐다봤다.
엄마는 말없이 짬뽕에 들어가 있는 홍합 껍데기를 발라 놓고 계셨다.
“우리 집 계약 곧 끝나는데 월세 올리진 않겠지?”
엄마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홍합 껍데기만 바르고 계셨다.
“우리 계속 여기서 살 거지?”
“….”
“그래야지”
대답을 끝낸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짬뽕만 드셨다. 마치 나의 얼굴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짬뽕이 그렇게 맛있어? 짬뽕 안으로 아예 들어가겠어”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 엷은 미소를 보인 뒤 고개를 살짝 들어 탕수육 하나를 집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마의 목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다는 걸 난 알아차렸다.
“엄마 목이 왜 그래? 조금 부은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이유인지 듣지도 못했지만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집 안 전체에 자욱하게 깔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이거 오늘 일 하다가 난간에…”
아들인 내가 아니라 누가 들었어도 엄마의 그 말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진실이라고 절실하게 믿고 싶었다.
다시 한번 되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더 큰 불안감에 내 심장이 터져버리기 전에 여기서 멈춰야 하나 내 젓가락이 멈춘 것처럼 나도 멈춰버렸다.
나의 이상함을 눈치챈 엄마는 그제야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보이며 나를 안심시켰다.
“뭘 그러고 있어? 면 다 불겠네. 진짜야,진짜 일하다가 갑자기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난간에 부딪혔어”
“괜찮아? 병원은 안 가봐도 돼?”
“무슨 병원을 가 아무렇지도 않아 얼른 먹기나 해”
찜찜하지만 엄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그럼 집 계약은 내가 주인아줌마한테 물어볼게. 월세 올리면 계약서 다시 써야 하니까”
“그래…”
그 이후로 말 없는 저녁 시간이 불편하고 느리게 흘렀다.
'탁' 어느정도 식사를 마친 엄마가 먼저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주영아 엄마가 오늘 많이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도 되지?”
“그래 얼른 가서 쉬어, 내가 정리할게”
엄마는 한눈에 봐도 고단해 보이는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나는 남은 음식들과 그릇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한데 오늘은 나도, 엄마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다음날의 아니, 어쩌면 다음 주의 우리에게 오늘의 짐을 떠넘기기로 하고
불편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