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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시나 봐요.

낭만과 여행에 대해

by 작은 사슴

"여행을 좋아하시나 봐요."


송 씨가 최근에 다녀온 동남아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를 10분 즈음 얘기했을 때에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 위해 건넨 말이다. 돌아오는 "물론이에요."라는 말은 굳이 예상할 필요도 없이 "How are you?" 뒤의 "I'm fine thank you and you."처럼 대한민국인 전체가 공유하는 관용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효율과 재산축적을 추구하는 남성의 본능적 욕구도 최근에 이르러서는 무의미한 것마냥 많은 남성들도 여행을 가는 시대가 되었고 1년에 한 번 여행을 다녀오는 게 평범한 것처럼 여행을 다녀오면 다음 여행지의 비행기 티켓을 알아본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들에게 여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은 타지에서 자신만의 독립성을 철저히 확신시키는 속성을 지녔다. 삶이라는 구조 속에서 일상이 의미하는 바는 나 자신이 그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완성되고, 따라서 나 없는 일상을 조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타지에서의 나는 '유학생'과 같아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어울림 혹은 어울리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환대받을 수 있다. 이는 매우 편리한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성에 대한 방향을 일방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은 주로 관계로 지치는 한국인들에게는 더더욱 큰 위로가 될 것이다(물론 돈이 떨어지면 그들의 환대는 바닥을 보인다).

확보된 독립성이 주는 해방감은 무시무시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기쁨과 고양감은 무한한 크기의 '자신만의 방'이 마련된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느끼는 감정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는 되려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흥분감을 실감한다(여행지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배덕감이 큰 행위는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아침에 일어난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아무 일정을 선택하지 않고 산책하며 길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 낭만이 가득 찬 것을 느낀다. 잠시 시간이 남아도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풍경과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어떤 식으로 듀엣 댄스를 추는지 관람하고 떠오르는 음악들을 흥얼대면서 하나의 악보를 완성하는 과정을 그리다 보면, 그 특별한 연주곡에서 여행지와 사람들과 온도와 바람의 세기는 고유함을 지닌 음표여서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끌리는 것에 대한 합일욕구 또한 여행의 중요한 속성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며 자신의 일부를 스며들게 할 토지를 천연덕스럽게 찾는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피부의 거푸집이 떨어져 바닥에 흩뿌려질 때 사람은 그 장소와 하나가 됐음을 느낀다. 끌리는 대상에 대한 합일욕구는 타자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므로 비단 사람뿐 아니라 공간도 사물도 범위 안에 들어오는데 그것은 무의식적이어서 알아챌 수 없으나, 사회적이기도 해서 모일수록 더 모인다. 한 번 '끌림'이 뿜어져 나오는 장소는 여행지 목록에서 제외되기 어렵고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순식간에 사람이 불어난다. 그 장소는 어차피 유명해질 장소였던 걸까? 혹은 단순한 끌림의 신호가 사회적 물결을 일으켰을 뿐인 걸까?

합일욕구에 의한 여행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결핍과 연관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합일하려는 욕구가 대상을 무릎 꿇리고 나의 일부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합일욕구에서 파생된 여행은 독립성과 해방감과는 반대의 영역으로, 말하자면 타지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집단 안에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으려는 심리를 내비친다. 사람들이 많이 간 곳을 가야 하고, 사람들이 높은 별점을 부여한 곳에만 여행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다수의 좋음이 곧 나의 좋음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타지라 하여 독립성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만족하는 법이 없다. 여행이 주는 경험적 가치를 소유적 가치로 치환하는 시야를 장착한 상태가 되어 어떤 즐거운 경험도 "이 정도 가격이면 잘 갔다 왔다."라는 말 안에 갇힌다.


독립성과 합일욕구라는 대비적인 두 가치가 서로 돌고 도는 모순적인 활동이 여행이다. 우리는 떠나고 싶다가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반대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다.

여행이란 인간을 어디로 인도하는가? 이미 거푸집을 뿌려댄 토지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건 인간이 가진 특성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영역표시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 여행지 어땠냐는 질문에 5년 전 다녀온 여행지라도 마치 어제 다녀온 것처럼 생생하고 장엄하게 경험담을 늘어놓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 어디 다녀왔어"라는, 질문 꼬리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갖가지 노력의 색들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여길 수 있는 걸까?


내 생각에 여행이란 일상 속에서 벗어나 나비의 날갯짓처럼(언제나 볼 수 있지만 신경 쓰며 보지 않는다는 사실) 삶의 여유를 들여다보기 위한 도전이다. 여행은 '낭만'의 속성에 기인하는데 Romance에서 비롯되어 뜻 그대로 환상적인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담론이기에 구설수에 오르기 좋은 것이며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티켓이기도 한 것이다.

어른들은 아직도 동화 속을 그리워한다. 아이로서 누리지 못한 것들을 어른이 되어 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어릴 적 먹고 싶던 과자를 마음껏 사 먹는 것, 생의 허기는 그런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소비행동으로 눈을 가린다. 충동적인 여행 또한 본질적으로 '침 나오는'것을 먹어치워 '허기를 달래는' 행동이므로 과자를 사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여행은 인스턴트 음식과 같아서 영양도 건강도 찾아보기 힘든 단지 포만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단기목표를 충족시키는 데 제 역할을 다한다. 여행에 대한 담론은 다시금 얼마나 화려한 음식을 먹었는가로 치환되며 근본적으로는 장난감 자랑과 다름없는 묘한 어린아이들의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반드시 타지로 떠나는 여행만이 낭만의 속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낭만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이지 않게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바꿔 말하자면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이지 않게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상을 여행으로 바꿀 수 있다. 낯섦과 익숙함을 구분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뇌의 편리함을 위해 조작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특별한 경험도 반복하면 그저 일상적인 것이 된다. 얼마 전에 경험했던 패러글라이딩의 경험이 내게는 인생에서 크게 기억에 남을 특별한 순간이었지만, 패러글라이딩 도우미 분에게는 일상적인 것이었다(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오늘 내가 5번째 손님이라고 말했다. 그 광활한 하늘을 날면서 어찌 그렇게 시큰둥할 수 있는지!).

여행이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정해두지 않은 것도 여행의 정의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으로 집 앞으로 떠나는 산책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믿는다. 다 똑같은 식물이 심어진 것처럼 보였던 화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가 지닌 고유함이 빛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 걸까 유심히 지켜보면 저 작은 몸으로 날아다니는 나비의 의사가 궁금해지고, 별안간 나비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입장을 헤아린다. 그 순간의 나는 육체를 떠나 자연과 동화되고 언어를 상실해 경외감에 빠진다. 긁힌 상처가 난 벽을 쓰다듬으면서 상처의 나이를 세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상상력을 뽐낸다.

나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독립성을 경험하고, 한 발짝 물러서 해방감 속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것, 타지로 떠나는 여행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일상을 음미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타지로의 여행을 특별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여행을 떠나는 순간 '지금부터 여행 시작이니 전부 기억해 두고 의미를 생각해야지.'라고 마음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에도 적용 가능한 난이도 쉬운 마음가짐이다. 출근길은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고 우리는 매일 다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평소라면 지나갔을 담쟁이덩굴을 상상력의 사다리 삼아 밟고 올라가 더 많은 생각들을 즐기고 맛볼 수 있다.


양갱은 일본에서 고급 디저트라 먹을 때 얇게 썰어 예쁜 접시에 내온다. 예쁘게 담긴 양갱을 보고 있자면 한국에서 먹을 때보다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은 조금만 신경 쓴다면 한국의 1500원짜리 양갱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낭만과 일상을 구분 짓는 건 '얇게 썰어 예쁜 접시에 내오는 것'이지 양갱 스스로의 품질이 한 일이 아니다(물론 아예 무시할 사항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중요하지 정말로 양갱의 재료가 국내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여행이 가지는 특수성이란 오롯이 우리의 '시선'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알게 된다. 1,500원 양갱을 사 먹어도 예쁜 접시에 차곡차곡 얇게 썰어 정리하면 그 나름의 낭만으로 잠깐이나마 여행을 맛볼 수 있다. 이처럼 여행이 주는 만족감은 대개 일상에서도 충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인가? 그것은 아니다.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에게 주관적인 개념이고, 내게 타지로의 여행이 일상 속의 여행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것도 결국 여행이었으므로, 나 자신의 기준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린 최대한 다양한 세상을 접할 필요가 있다.

우린 여행을 통해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자문하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펼친다. 생의 모든 시도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는 대답의 연장선상이며 또한 발견의 한 종류다. 타인과 연결되기도 하고, 연결을 끊기도 하면서 나의 취향, 선호, 어디까지 버티거나 참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이는 인간의 유한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인도의 갠지스강은 그 명성과는 다르게 다녀온 사람 모두가 치를 떠는 최악의 장소다. 곳곳에서 악취가 풍기고 더러운 몸을 맹물에 씻고 있으며, 다시 그 더러운 물을 길어 마시고 있는 장면을 한 시야로 볼 수 있다. 사진 찍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는 강에서 시체를 태우는 풍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장소로 여행을 가는 이유는 뭘까?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내 도덕적 우월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그 끔찍한 광경과 내가 사는 세상은 다르구나 라는 안도감?

나는 그런 곳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 스스로의 무용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어서 불태워지고 있는 장면과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상을 표류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일상'은 삼라만상을 담은 거대한 스펙트럼의 크기를 가지고,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실로 중요하다고 믿는 그 어떤 것도 사라져 버릴 무언가가 아닌가 하는 절대적인 무용감이다. 나도 별 것 아닌 이유로 쉽사리 시신이 될 수 있고 세상은 그런 사람의 절박함에 딱히 관대하지도 않은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여행이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즐거움이나 경박함이 주는 깨달음으로는 부족하고 고난의 속성을 포함해야 깨달음을 더 달게 성취해 낼 수 있다. 상대방의 신발을 대신 신고 하루만 지내도 타인이 나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것처럼, 대상에 대한 이해와 스스로의 발전은 언제나 불편함에서 온다.

여행은 스스로의 부족한 면모를 채우기 위해 가는 만족의 도전이 아니라 스스로의 부족한 면모를 찾기 위해 가는 발견의 도전이다. 무의식적인 내면의 결핍이 그러한 자신을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아우성을 제대로 직시하는 순간 일상 또한 여행으로 인식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의 모든 순간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늘 고꾸라진다. 맛있어야 하는 크레페는 생각보다 밍밍하고, 쫀득해야 할 프라페는 녹아흐르기만한다. 여행이 가진 불확실성과 계획을 전복시키는 불량한 태도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너무 쉽게 좌절시키고 나약함을 벗겨 드러낸다. 바로 그때 우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자신의 '작음'을 깨닫기도 하고 또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주체로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여행이 가치 있는 건 아니지만 가치는 늘 '여행' 속에서 발견되므로 자신을 돌아볼 때에야 여행은 비로소 풍만해지고 섭취 가능한 영양소가 되어 몸과 정신에 자리 잡는다.


인간이 경험 가능한 최대의 여행은 자신의 고유한 삶이다. 현재에 집중하며 즐겨야 오롯이 배우고 즐길 수 있고, 그것을 알 때가 되어서야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물론이에요."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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