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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움과 가벼움

도 씨와 마르코

by 작은 사슴

도 씨는 참을성이 없는 11살의 사내다. 부족한 인내력은 어떠한 성격적 결함이라기 보다도 신체적 물리작용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정신이 참아내더라도 몸은 참지 못하는 감각 반응에 의한 요소들로 설명되는 것이 그의 생이었다. 학급의 친구들은 그러한 도 씨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교양과 격식을 갖춘 태도 덕분에 그의 생활은 트집이나 허물 잡힐 데 없이 부드러웠다.

도 씨는 특히 짧은 대장의 길이와 건강한 활동으로 인해 변을 참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했는데 그의 안색에 보랏빛이 올라올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친구들의 입에서 배려가 샘솟는 것이었다.


"아, 친구여! 그대의 얼굴에 번지는 미묘한 긴장감과 이마에 맺힌 결단의 빛을 보니, 이건 더 깊은 사색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로군. 내가 한걸음 물러서며 그대의 여정을 방해하지 않겠노라. 화장실은 저쪽이니, 망설임 없이 나아가게!"


"무척 감사한 배려로군요."


그럴 때마다 도 씨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음에 감사했다.


도 씨는 어릴 적 떠돌이 개에게 물렸다. 왼팔의 10cm 남짓 그어진 흉터는 그에게 있어 생의 절박함이자 살아있다는 신호로 그어진 성호였다. 성호가 그어져 있는 동안은 도 씨는 개를 싫어하진 않더라도 굳이 좋아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개꼬리의 살랑거림이 그에게는 자신을 솎아내려는 어떠한 낚싯줄, 단지 미끼처럼 느껴졌으며 다시는 날카로운 이빨에 채여가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의 원천이었다. 그가 가진 흉터는 세상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투구이기도 했으니 굳은살과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할 수 있는 걸까?


사고는 눈이 내리던 겨울에 일어났다. 학교 정문에서 기르던 마르코는 전교생의 이쁨을 듬뿍 받는 강아지였으며 도 씨 학교의 마스코트 역할이기도 했다. 마르코는 추운 겨울에 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으므로 도 씨는 큰 의심 없이 붉은색 목도리를 얼굴까지 뒤집어쓴 채 정문을 나섰다. 그런데 눈을 감고 걸어가던 중 마르코의 뒷다리를 밟아버린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도 씨는 뒤로 넘어졌고 깨갱대는 마르코를 쳐다봤다. 그 강아지는 힘없고 약한 눈으로 떨며 집으로 숨었다. 도 씨는 재수가 없으려니 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마르코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고, 학교 마스코트의 뒷다리를 밟아 절게 만든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 씨의 학교는 민주적인 절차가 적절히 마련되어 있었고 학생회의 활동도 활발했으며 선생님들 또한 그런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토론 활동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극악무도한 범인을 잡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 설치된 380개의 CCTV 중 개집 앞을 비추던 CCTV를 돌려보자 선명한 도 씨의 모습이 잡혔고, 그는 곧바로 학생 토론에 소환되었다.


소환된 도 씨는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토론장에 끌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변명이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한다는 것이지 않는가? 도 씨에게 개를 밟은 건 분명 잘못이긴 했지만, 의도한 바가 아니었기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를 일이 없었으며(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본다) 의도가 없는 건에 대해서 본인이 피해를 직접 받은 개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혹 동의할지라도(꺼림칙하다), 그 무지막지한 우연에 가까운 일에는 징조도 예상도 없었기 때문에 전혀 관련 없는 주변인들에게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사과할 일이 없는 사고에 대해 어찌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명백한 사고였다. 개가 사람을 문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개를 문 사고. 어떠한 악의도 의도도 없는, 단지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물리적 작용. 그러나 우연도 우연이라 주장할 때에만 그렇게 인식될 뿐 의미의 바다 안에서 우연은 반드시 필연이기 마련이다.


"대체 개집을 감시하는 CCTV는 왜 있는 겁니까?"


"본 토론과 상관없는 질의 이므로 기각하겠습니다."


"난 토론에 응하겠다고 수락한 적이 없습니다!"


"도 군의 태도가 불량하니 발언권을 회수합니다. 지금부터 변호를 위해서는 디오니 군만 발언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역을 받은 솔은 총명하기로 소문난 학생회장이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학생들의 불만과 요구를 취합하고, 학교 측과 협의하여 필요한 부분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권위 있는 12살의 소년이었다. 두터운 신뢰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재판관의 망치보다 무게가 무거웠다.

도 씨는 자신을 처벌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재판에 갇혀 스스로가 개보다 나은 사람이기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절망적인 것은 토론의 주제가 처벌의 강도였다는 점이다. 변호 측은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는 전제를 인정하고 나서 싸움을 시작했고 애초에 그의 무죄를 주장할 생각이 없었다. 도 씨는 아려오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무기력하게 앉아있어야 할 뿐이었다.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을 회수당한 채!


"아, 들어보시오! 이 문제는 단순히 강아지 한 마리를 다치게 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흔드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는 단순히 동물이 아니오, 우리 학생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생명체요. 이런 행위를 가볍게 넘긴다면, 결국 우리는 인간성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경외감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오. 강력한 처벌만이 우리의 윤리적 선을 지킬 수 있소!"


"저도 마르코를 다치게 한 행위는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에게 고의로 해를 가했다면, 이는 곧 가족의 일원에게 상처를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법적 처벌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엔 말이야,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야. 강아지를 다치게 한 놈이 그냥 넘어가면, 그다음엔 뭐가 되겠어? 아무 동물이나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거지. 난 그렇게는 못 봐. 강아지를 다치게 했으면 책임지고 처벌받아야지. 간단한 거 아냐? 처벌은 그런 걸 딱 잡아줘야 하는 거라고."


"물론, 마르코를 다치게 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우연한 사고였을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됩니다. 지나치게 강한 처벌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 처벌은 냉철해야 합니다. 마르코와 학생의 관계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성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해야 합니다. 약한 처벌로 경고를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도 씨는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디오니! 당신의 말에는 비겁함이 묻어나는구려. 우연이라고요? 세상에 진정한 우연이란 없소! 그런 핑계로 처벌을 약화시킨다면, 사람들은 더 대담해질 뿐이오. 강력한 처벌은 바로 이런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오. 법은 단지 형벌이 아니라 교훈을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오."


"그의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수일 가능성은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실수와 무책임한 행동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코를 다치게 한 상황이 단순 실수였는지, 아니면 무책임의 결과인지 면밀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적용해야 합니다. 동물의 생명은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도 군을 옹호하는 당신 말이 좀 이상해. 실수였고 반성하면 다 용서해줘야 한다고? 그런 식이면 다 실수였다고 하면 되는 거 아냐? 마르코가 다쳤는데, 그걸 대충 넘어가면 사람들도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생각할 거라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누가 책임질 건데? 난 그렇게는 못 봐. 난 복잡한 말 잘 모르겠고,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어. 강아지를 다치게 하면 제대로 혼나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지. 처벌은 단순하고 강해야 돼. 그게 사람들한테 가장 잘 통하는 거야."


"여러분의 감정적 반응은 이해합니다. 저도 도 군에게 강한 분노를 느꼈고, 마르코에게는 강한 연민을 느꼈어요. 하지만 과도한 처벌은 오히려 체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태도는 부적절합니다. 처벌은 범죄의 중대성과 비례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적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토론장의 분위기가 열이 오르는 와중에 그들은 너무나도 정직하고, 또 예의 바른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토론을 벌이는 과정은 진정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전쟁이었으며 체스와도 같은 수싸움이었으니, 도 씨는 그 보드게임판 밑에 깔려 아무도 찾지 않는 룰북 같은 것이었다. 게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자들에 의해 그 자신에서 파생된 게임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처지라니, 이 얼마나 가여운가!

사려 깊은 사회자 솔은 토론장 구석 따듯한 난로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 마르코에게도 발언권을 주어 그의 현재 상태를 물었다. 마르코는 꼬리를 흔들며 작게 끼깅댔고 그 소리를 들은 도 씨는 더욱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이 가녀린 생명체를 보시오. 저 작은 몸이 얼마나 아파할까? 그 눈동자에는 말 못 할 고통과 동시에 우리를 향한 의지마저 비치고 있소. 인간의 잔인함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신뢰하는 이 순수한 존재라니, 마음이 무너지는구려. 우리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인간성을 논할 자격이 어디에 있겠소?"


"조용, 조용. 이쯤에서 도 군의 의견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심정이나 의견을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사회자 솔의 깊은 배려심은 도 씨에게도 뻗치는 차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도 씨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까? 마르코와 도 씨가 같은 처지에서 평가받는다는 것에 대해 이젠 감사하다고 여겨야 하는 지경까지 이른 걸까? 도 씨는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파오는 배를 부여잡고 작게 대답했다.


"화장실을 가야겠습니다."


"화장실이라고………."


30초가량의 정적이 흐른 뒤 사회자는 역정을 내며 신성한 토론을 더럽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한 도 씨의 변호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디오니의 처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서라도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말을 떠올려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 씨는 이미 한계였다. 그의 얼굴빛은 보랏빛이 침잠해 있었으며 광활한 장 활동 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배는 이미 몇 번이고 꾸르륵 소리를 내며 탈출을 요구하고 있었다. 세상이 뒤집히고 뿌연 안갯속에 갇힌 것처럼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시력도 청각도 점점 희미해진 채 들리는 건 오직 하나의 소리뿐이었다. 결국 부족한 인내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모두가 아는 방출의 소리가 토론장에 울려 퍼졌다.


뿌지직-


"……."




"거 봐 저럴 줄 알았어."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 말했다.(이번 정적은 20초를 넘지 않았다) 정말로 학급 친구들은 도 씨를 이해했던 걸까? 11살 아이들의 교양이란 실로 무시무시하고 형이상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자신들의 이해 영역에 도 씨를 당연하듯 포함시켰지만 진실한 의미의 도 씨, 정확히 말하자면 도 씨의 대장은 그 영역에서 제외당했다.


도 씨 자신의 당혹감의 크기는 그 주변인들의 당혹감과 같은 크기였을까? 재미있게도 도 씨는 대장의 존재를 인정한 순간부터, 그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주변의 모든 소리와 빛을 차단하고 자신의 운명을 바퀴가 닳아 구를 때마다 덜컹대는 수레에 담은 그 순간부터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다. 그때의 도 씨는 어떠한 언어와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몸에 두른 채 더러운 무언가, 이를테면 변의 여러 관념에서 탈출했다. 그는 울고 있었지만, 시원하게 웃음 짓고 있었고 그리하여 토론장에서 웃는 이는 마르코와 도 씨 단 둘만이 됐다. 형이상학의 테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되찾은 경이로운 세계에서의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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