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지난 10일간 학교 수업을 쉬고 딸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긴 시간을 비우게 되어 반 티쳐 아미라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 그녀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아미라는 "나폴리는 지난번에도 가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그녀 말이 맞았다. 예전에도 나는 나폴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많은 곳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쳐 아쉬움이 남았고, 이번에는 딸이 꼭 가보고 싶어 한 해변 마을 포지타노를 보기 위해 다시 나폴리를 찾기로 했다.
딸에게는 이탈리아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가봤던 곳 중 다시 가고 싶은 도시들과 새로운 곳을 함께 묶어 여행 계획을 세웠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는 로마, 피렌체, 나폴리 등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유적과 유물로 가득하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든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딸이 단독으로 유료 투어를 신청한 날엔, 나는 전에 방문하지 못했던 장소를 혼자 둘러보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도로가 넓고 정비된 구조가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형성된 도시 위에 현대의 도로가 얹혀 있어 운전이 쉽지 않아 보였고, 특히 로마의 도로는 좁고 울퉁불퉁해서 걷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여행 중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나폴리에서 포지타노까지의 여정이었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기차요금이 약 5만 원, 단체 투어 비용이 15만 원, 나폴리-포지타노 간 배값이 9만 원 정도로 계산되니, 단 하루 일정에 드는 비용이 꽤 컸다. 그래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번 아니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가기로 결심했다.
결과적으로는 단체 여행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가장 합리적이었다는 걸 다녀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폴리는 몇 번 와본 덕분에 익숙했지만, 포지타노는 나도 처음 가는 곳이라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정보 수집을 하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기차를 타고 소렌토에 도착한 뒤, 많은 사람들이 항구 쪽으로 도보 이동하는 걸 보고 따라갔더니 수월하게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 30여 분 정도 지나자, 딸이 그토록 꿈꾸던 포지타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아름다운 항구와, 해변과 맞닿은 산비탈을 따라 빼곡히 지어진 주황색 지붕의 집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관광객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항구 바로 옆에는 해변과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해변은 좁고 유료 비치와 무료 비치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무료 해변공간이 협소한 탓에 물놀이를 할만한 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무더위를 피하려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려다 발바닥이 데일 정도로 뜨거워, 급히 파라솔 그늘로 뛰어들자 옆에 있던 관광객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바닷물은 생각만큼 시원하진 않았지만, 수영을 즐기며 물 위에 떠 해변을 바라보니 오렌지색 건물들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피렌체에서는 여행 중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유명 관광지는 워낙 관광객이 많아, 사전 예약 없이는 입장이 어려운 곳이 많다. 문제는 명칭도 낯설고 절차도 복잡해, 일일이 예약을 진행하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참고해 방문지를 골라 예약하고 결제하니, 그제야 확인 메일이 도착했다.
하지만 예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숙소에서의 거리, 이동 동선, 입장 시간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해서,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과 종탑을 방문했을 때였다. 종탑은 꼭대기까지 45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아침 일찍 첫 타임으로 입장하려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바코드 검표 시, 내 티켓이 인식되지 않았다. 뒤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고, 검표원과 나 모두 당황스러웠다.
검표원이 한글로 된 티켓이 아닌, 이탈리아어로 된 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나는 “받은 티켓은 이것뿐이고, 입장 시간은 오늘 9시 30분으로 맞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뒤쪽 유리 칸막이 사무실로 가 상급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 정도 티켓을 위조할 사람도 없을 텐데, 모든 사항이 맞는데도 책임자에게 확인을 맡기는 이 방식이 정말 비효율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관광지만이 아니었다. 관공서, 식당, 마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다. 자신이 맡은 영역 외의 일에 대해서는 절대 결정하지 않고, 반드시 담당자에게 넘기려는 문화. 그래서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모든 업무가 정지되곤 했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이끌던 나라다. 지금도 찬란한 유물과 유산으로 수많은 이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가끔은 그 유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문화적 자부심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유연함과 창의성, 효율성은 외면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오래된 문명의 무게 속에서 여전히 계급과 역할의 틀에 갇혀 있는 듯한 사회. 그 모습이 한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