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새벽 네 시, 남겨진 문자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잠을 자던 중, 새벽 4시 10분에 피우스가 임차인 채팅방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새벽 시간에 수신된 문자였기에, 잠결에 흐릿한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몰타를 떠나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과, 그간의 힘겨운 상황들이 담겨 있다는 것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떠나야 하는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같은 집에서 지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인사 한마디 없이 홀연히 사라진 사실은 몹시 기분이 상했다.
메시지에 따르면 피우스는 몰타에서 집을 구하려다 사기를 당했고, 의과대학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프리카 출신 흑인 의사로서 서구 사회에서 차별을 받아 왔다고도 토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의학 공부를 마쳤지만, 전쟁으로 실습을 하지 못해 몰타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도 거주 문제와 비자 문제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긴 설명을 문자로 남긴 후, 그는 조용히 방을 나가버렸다.


그의 이야기가 진심이었든 아니든,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이나 작별 인사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벨미는 피우스를 어느 정도 이해하며, 몰타의 비자 절차가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탓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 아벨미 역시 취업비자를 기다리며 겪은 지난한 과정을 떠올렸다. 피우스는 그 사실을 몰랐던 걸까? 아니면 기다릴 의지가 없었던 걸까?


나는 피우스와 처음 만났을 때 아프리카 본토 출신 흑인 거주자를 실제로 마주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190cm에 가까운 키와 큰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처음부터 부담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가 이 집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내가 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임대인 조이가 정한 일이었기에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는 집에서 종일 화상통화를 하며 일했기에 식사 시간 외엔 거의 마주치지 않았고, 대화도 많지 않았다. 내가 외국인과 생활하며 영어를 배우고자 했던 기대는 무너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그냥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와의 생활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의 요리는 특유의 강한 향이 있었고, 가스레인지에서 요리할 때마다 냄비 뚜껑을 열어 음식물이 흘러넘쳤다. 문제는 그가 이를 청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매번 내가 닦아야 했고, 피우스는 점점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밤새도록 방에서 통화를 하곤 했는데, 내 방은 바로 그의 옆방이었다. 몇 번이나 그의 통화 소리에 잠에서 깼지만, 그가 의대생 아내의 학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정을 들어 알고 있기에 쉽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거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그에게 조심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후로는 통화 소음은 줄었다. 그 점은 다행이었다.


결국 그는 월세 납부일에 맞추어 몰래 집을 나갔다.
이로 인해 공과금 문제가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전기, 가스, 수도 요금을 매달 1/n로 나누어 냈는데, 피우스가 살았던 두 달 사용한 요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 떠난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힘든 상황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타이밍에 아무런 책임 없이 떠난 것은 너무 의도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긴 긴 메시지 외에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적어도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는 했어야 했다.


피우스가 나간 사실을 집주인 조이에게 알리자, 조이와 그의 남동생 마뉴엘이 곧장 집에 방문했다.
우리는 빈 방을 보여주고, 공과금 문제를 상의했다. 아벨미가 상황을 설명했고, 나는 그가 사용한 공과금 문제를 언급했다. 조이는 보증금에서 공과금을 제하고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집주인 조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벨미가 갑자기 내가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꺼냈다. 아직 말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당황했지만, 이미 말이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조이에게 내 방은 저렴해서 인기 있는 방이라 쉽게 새로운 입주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직접 내가 새 임차인을 구해주겠다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조이와 마뉴엘은 이번 피우스의 경우처럼 임차인이 갑자기 떠나는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유쾌한 성격이었고, 피우스의 책임을 나와 아벨미에게 돌리는 일은 없었다. 대화는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마뉴엘은 피우스가 쓰던 방의 창문에 비가 새지 않도록 비가리개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내 방 테라스 문도 함께 점검하느라 정리하지 못한 내 방까지 보여주게 되었다.
방이 아주 깨끗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엉망은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집주인과 가볍게 악수를 하며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집주인에게 “나 같은 사람을 구해 달라”라고 말했고, 조이와 마뉴엘은 웃으며 “굿 바이”라는 인사를 남겼다.


그들이 돌아간 후, 나는 아벨미에게 “조이와 마뉴엘은 참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말했고, 아벨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피우스 문제로 당황스러운 한 주였지만, 결국 문제는 수습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사람도 곧 들어올 것이다. 그저 또 하나의 지나가는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피우스가 집을 나간 뒤로 또다른 문제가 생길 즐은 몰랐다. 관리비 문제로 아벨미, 집주인과 여러 번 설전을 하게 되었고, 집주인이 부담하겠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몰타에서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아벨미와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되어 우정이 갈라지는 계기가 되어 버리는 운 나쁜 상황까지 연출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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