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내가 유럽의 몰타에 정착한 뒤 다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은 순수하게 유럽의 감성을 느끼는 것이었고, 오랜 직장생활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여행기를 따로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살게 되면서, 나는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녔고, 많은 관광지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출발했다면 단체 패키지여행을 이용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이곳에 살고 있으니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계획하고 혼자 떠났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몸이 피곤해 관광은 포기하고 숙소에서 쉬기도 했다.
나는 전문 여행가가 아니다. 유럽의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때로는 실수도 하고, 혼자라는 이유로 정중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불쾌한 응대에 항의하거나 인상을 찌푸린 적도 적지 않았다.
여러 번 여행을 다니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장소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선 결국 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명 도시를 방문할 때는 첫날은 한국인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고, 이틀째부터는 자유 여행을 하거나 영어 가이드가 진행하는 전문 투어에 참여하곤 했다.
영어 가이드 투어는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떤 주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해 수준이 달라졌고, 특히 외곽 지역에서 진행되는 영어 투어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단점이 있다면, 현지 투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어느 순간 영어가 시작되는지를 놓쳐 헷갈릴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스페인어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거리나 문화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서 문화를 이해하거나 언어의 필요성이 떨어졌으나 막상 유럽에 살면서 스페인어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다.
반면 한국인 투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스이고 돈이 되는 장소 위주로만 구성돼 있어, 정작 소소하고 덜 알려진 곳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도시 첫날은 한국 가이드 투어를 통해 전반적인 정보를 얻고, 다음 날에는 혼자서 숨겨진 명소나 원거리 외국어 가이드 투어를 찾아 나서는 식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이번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도 그런 방식이었다. 국립 오페라 하우스와 자허 초콜릿 케이크로 유명한 카페, 그리고 시내 중심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았다. 자유시간 동안 가이드의 추천에 따라 매운맛 소시지와 따뜻한 핫 와)을 마셨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와인을 마시니 몸이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고, 큼직한 소시지는 가벼운 점심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을 찾으려던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가이드가 알려준 화장실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거리엔 인파가 넘쳐났다. 결국 약속 시간에 맞춰 다시 약속 장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가이드 수신기에서 그룹이 이동 중이라는 안내음이 들렸다. 나는 급히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이미 그룹은 내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마도 인원 체크 없이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 듯했고,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긴급히 가이드에게 연락을 하자, 그들은 이미 '벨베데레 궁전'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라고 했다. 목적지 주소를 받아 구글 지도에 입력하고, 그 뒤를 쫓아 나섰다. 그 과정은 마치 영화 '007'의 한 장면같이 빠른 스피드를 요하는 순간이었다.
초행길에서 구글 지도는 유용했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방향을 잘못 잡는 일이 많았다. 환승까지 해야 하니 부담은 더 컸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았지만, 상대도 여행객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걱정이 상황은 더더욱 난처했다.
잠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투어를 추적하기로 했다.
20여 분간 지하철을 타고, 걸으며, 다시 뛰며 목적지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궁전까지는 약 700미터 약속된 궁전에 입장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 계속해서 뛰었다.
구글 지도의 안내에 따라 큰길을 건넜으나, 이내 다시 반대편으로 건너라는 지시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도를 축소해 길을 재확인하고 방향을 다시 잡아 뛰어갔더니, 다행히도 나의 그룹은 매표소 앞에서 아직 대기 중이었다.
정말 안도감이 밀려왔다. 투어 요금을 미리 지불했고, 수신기도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면 다시 만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이드에게 정중히 사과했고, 그는 “오, 정말 빨리 잘 찾아오셨네요!”라며 여유롭게 반겨주었다. 경험이 많은 듯, 화를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이드는 비엔나 현지에서 살며 외국인과 결혼해 아이도 있다고 했다. 오늘이 휴일인데도 아이들을 두고 일을 나왔다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미술품을 공부하는 것을 즐긴다며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된 작품들의 역사, 작가, 시대적 배경 등을 깊이 있게 설명해 주었다.
반나절 투어가 끝나고, 숙소가 궁전 근처라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오늘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끝까지 투어를 완주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더 주의 깊게 듣고, 길을 더 정확히 파악하자고 다짐했다.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구글 지도에 의지해 돌아다닌 하루. 길을 두 번이나 되짚어야 했고, 고된 하루였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