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내가 몰타에 오게 된 건 올해 1월 말쯤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한 달 정도 뒤면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곳 몰타의 겨울은 유럽 대륙과는 다르게 그리 춥지 않다. 12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바닷바람은 차갑기보단 오히려 온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난주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여행하며 동유럽의 진짜 겨울을 마주하게 되었다. 첫날부터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았고, 외국에 나와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그로 인해 10일 가까이 되는 일정 내내 몸이 불편했고, 여행의 흐름도 어딘가 흐트러졌다.
다행히 머물렀던 호스텔에서는 무료로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었고, 나는 매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 작은 건식 사우나에서 슬로바키아 가족을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내겐 꽤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통성명을 나누고 서로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슬로바키아에 있는 기아자동차 같은 한국 공장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낯설지 않다고 했다.
마침 나도 여행 중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반나절 들른 적이 있어, 그 얘기를 하니 그 가족은 나에게 더 호감을 보이며 웃었다.
요즘 유럽에서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이나 “북한 사람이냐”라고 농담을 던진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요즘은 가끔 나도 농담처럼 “그래,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받아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들도 웃으며 가볍게 대화를 이어간다.
여기 유럽에서 나는 ‘소수의 아시안’이다. 그러다 보니 유럽인들 중엔 아시안은 영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먼저 말을 걸지 않거나, 대화를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영어로 말을 걸면 대부분은 열린 태도로 대화를 받아준다. 사실 유럽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영어 실력은 다양한 편이었다. 내가 다소 서툴게 말해도 상대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면, 대화는 어렵지 않게 이어질 수 있었다.
짧고 가벼운 대화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또 유럽을 여행하며 여러 도시를 지나온 덕에, 내가 다녀온 곳에 살았던 사람을 만나면 금세 친근감이 생기곤 했다. 그들도 자신이 살던 도시를 누군가 다녀왔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곤 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언어를 넘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때론 놀라워하고,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거리를 좁혀갔다.
슬로바키아 가족과도 그런 시간들을 함께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4일 동안 매일 저녁 사우나에서 마주하다 보니 정이 들었고, 서로의 존재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지막 날 밤에는 그들과 다시 마주치지 못했다.
작별 인사도, 연락처 교환도 없이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