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몰타 1년, 아직도 낯선 것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10여 일간의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몰타로 돌아오니, 집에 남아 있던 반찬거리들이 부실해 근처에 있는 Lidl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살 때는 자가용을 이용해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이 흔했지만, 이곳에서는 뚜벅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장을 본 뒤 직접 짐을 들고 집까지 걸어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슈퍼마켓이 도보로 약 200미터 거리에 있어 다행이었다.


장을 볼 때마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영어로 된 과일 이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이 반복됐다. 사과, 오렌지, 배처럼 기본적인 단어는 알지만, 그 외의 과일들은 생김새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에서 '배'라고 하면 한국처럼 동그랗고 큰 배가 아니라, 작고 가지처럼 생긴 초록색 배가 대부분이다. 처음엔 그것이 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는데, 최근에서야 그게 '배'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맛도 한 번 보았다.

한국 대형마트처럼 시식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없어 이방인인 나로서는 생소한 과일을 실제로 사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오늘은 과일과 야채를 비롯한 일부 품목들이 Lidl 멤버십 회원이면 일반 가격보다 20~30%까지 할인된다고 하기에, 이전에도 몇 번을 앱을 다운로드해 가입을 시도했지만 “거주 국가 제한으로 인해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서 매번 가입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오늘 장을 보고 계산을 하니 총금액이 28유로가 나왔고, 멤버십 할인을 받지 못해 약 5유로가 더 나왔다. 적은 금액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문의했더라면 이런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컸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조차 어려웠기에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오늘은 햄버거를 만들어 먹으려고 콜라 한 병을 사러 나갔는데, 문득 멤버십 가입 문제를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매장 보안요원에게 말을 걸어 문제를 설명했지만, 내 핸드폰이 한국어로 설정되어 있어 이해가 어려운 눈치였다. 결국 기본 설정 언어를 영어로 바꿔 앱이 실행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니, 그도 여러 번 터치해 보며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계산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라 계산대 앞은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들에게 이런 문제를 부탁하는 것은 민폐일 것 같아 또 한 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떠날 텐데, 굳이 가입 안 해도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라며 또다시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산 중에 문득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셀프 계산대를 관리하던 직원에게 멤버십 가입에 대해 다시 한번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앱 상에서 ‘거주 국가’를 몰타로 설정해야 한다”라고 설명해 주었고, 직접 내 핸드폰 설정을 바꿔 주었다. 그제야 앱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가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였는데도, 수개월 동안 포기한 채 현금 할인 혜택도 받지 못하고 과다한 비용을 지불해 온 것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하고도 열흘 남짓. 앞으로 장을 볼 일이 얼마나 남았겠으며, 그 혜택이 또 얼마나 될까 싶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짧지 않았던 1년, 몰타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익숙해졌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작은 일 하나에서도 여전히 현지인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곧 떠나야 할 시간. 마음이 조급해지고, 이곳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의 이름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막상 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날이 오면,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까?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묘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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