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하늘에서 내려다본 인연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 이 글은 이미 작년에 써 놓은 것을 몇 번의 수정을 거쳤고, 금년 4월 초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120여 개를 올리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업로드하여 버겁거나 지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글 작업을 하다 보니 하루는 피곤하기도 하고 또 하루는 스트레스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이자 구독자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재미있다고 말하며 등장인물 중 특정인에 대해 후속 편을 묻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애독자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마감하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지금은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모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몰타가 적도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 겨울이 춥지 않을 거라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겨울밤이 되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무척 춥게 느껴진다. 한국처럼 혹독한 추위는 아니지만, 이곳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며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때론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도 한다.


오늘은 지난주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중국인 부부, 양양과 샨의 환송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다음 주면 중국 다롄으로 돌아간다기에 학교 근처 King’s Gate Gastropub이라는 식당을 예약해 10여 명이 모였다. 모임의 구성원은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양양 부부, 콜롬비아인 등 국적이 다양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오랜 시간 같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며 시간을 함께했고, 모국어처럼 능숙하진 않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통해 서로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만약 우리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혹은 영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몇 시간을 한자리에서 함께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멀리 몰타에서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아주 특별한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고, 나 역시 내년 1월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다 보니, 이번 환송 모임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양양 부부와는 같은 반에서 수업을 여러 번 함께 들으며 영어 공부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어 친해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언젠가 식사 후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차를 마신 적도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박물관에서 본 금제 장식


국적은 다르지만, 영어라는 공통의 언어 덕분에 우리가 겪은 추억과 웃음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양양에게 “너를 보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자, 그는 “중국과 한국은 가깝다. 기회가 되면 다롄에 오고, 나도 한국에 가겠다”라고 답해주었다. 콜롬비아 친구와 일본인 친구도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나도 ‘국제파’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년 가까이 지내며 알고 지낸 친구들이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 동안 이곳에서 영어를 공부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직장인, 학생, 주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마치 일주일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아마 그동안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기억들만 어렴풋이 남았겠지만, 좋았던 순간도, 슬펐던 기억도 하나하나 글로 남겨왔기에, 지금은 그 기록들이 내 기억의 앨범이 되어주고 있다. “정말 그땐 그랬지”라고 되짚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양양과 샨에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말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데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느덧 이곳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정리를 하지?”라는 고민이 들지만, 결국은 “때가 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해야 할 일을 조금 뒤로 미뤄본다.


일본인 친구 히카리, 유키와 작별 인사를 한 뒤, 환승 없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몰타대학병원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약 20분 거리.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라 거리는 어둡지만, 그동안 수없이 걸었던 길이라 이제는 익숙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이 길도 언젠가는 ‘추억’이라는 단어에 덮여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간 후,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 반 영어 교사 다이얀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은 은퇴한 후에 다시 몰타로 돌아올 것 같아요.”
그 말처럼, 언젠가 정말 다시 돌아올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매년 유럽 여행을 마치고 몰타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몰타를 내려다보며 이 작은 섬에 다시 도착하는 게 늘 설레고 궁금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만났던 친구들, 몰타대학 친구들, 기숙사에서 함께했던 친구들, 랭귀지 스쿨의 선생님들, 에드가, 나만, 마티아스, 마자리카 같은 현지 직장인 친구들, 집주인 조이와 동생 마뉴엘, 그리고 함께 살았던 아벨미, 알바로, 피이우스, 샤디까지. 그들은 모두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소중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큰 변화는 없겠지만, 나와 함께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직 젊고, 그들의 미래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다. 아마 시간이 흘러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질 것이다.


미래에 내가 너무 많이 늙어버려 그들 앞에 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꼭 한 번쯤은 다시 몰타에서 재회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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