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몰타의 밤, 파쳐빌이라는 세계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튀니지 출신 셰디가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여전히 어색했다. 우리는 중요한 사항이 있을 때만 그룹 채팅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월세나 공과금 납부일, 주간 청소 구역 안내 같은 실무적인 얘기만 오갈 뿐 직접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다.


집에 사는 세 명이 모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삼각구도의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된 느낌이었다. 과거 나이지리아 출신 피이우스가 이사 왔을 때는 아벨미가 중재자가 되어 자연스레 관계를 풀어갔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벨미와 셰디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아벨미가 직장에 나간 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다. 저녁을 건너뛰기로 마음먹었지만, 밤 9시가 넘자 허기가 밀려왔다. 수영장을 다녀온 후 늦은 점심을 3시쯤 먹었지만, 배고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귀찮기도 하고 몸이 무거워 최소한의 간단한 식사만 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오래간만에 TV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때 셰디가 한가한 듯 방에서 나와 거실 테이블에 앉았고, 담배가루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가 흡연자라는 사실은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수제 담배를 말아서 핀다고 했다. 유럽 여행 중 기차역이나 공원에서 담뱃잎을 직접 말아 피우는 사람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그 모습이 내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예전 한국에서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신문지 같은 종이에 필터 없이 말아 피우던 모습을 떠올리게도 했다.


수제 담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셰디는 내가 흥미를 보이자 “예전에 담배를 피운 적 있냐”라고 물었다. 나는 30대 초반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던 시절, 몇 년간 흡연을 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셰디는 이내 나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Have you ever smoked weed (Cannabis)?” (대마를 피워 본 적이 있나요?)

처음 듣는 단어라 바로 이해하지 못했고, 셰디는 곧바로 구글에서 식물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림을 보니 대마초였다. 그는 몰타에서는 대마가 합법이라며, 내가 피워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 국적자로서 외국에 체류 중이라도 대마 흡연은 여전히 불법이며, 외교부와 대사관의 공지를 통해 주기적으로 금지 사항을 안내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법한 행동을 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이야기하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셰디는 “외국에 나와 있는데, 누가 알겠냐”며 가볍게 넘겼지만, 나는 한 번의 호기심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확고하게 “관심 없다”라고 답했다.

내가 흥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흡연 시 마치 마약처럼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아마도 그는 아직 20대 초반이라 세상을 다 알기엔 이른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를 신뢰해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장난스럽게 “혹시 코카인 같은 마약도 해본 적 있냐”라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예전에 해본 적 있다”라고 답했다. 나는 ‘마약은 한 번이라도 하면 끊기 어렵다’고 알고 있어서 “그럼 지금도 하고 있는 거냐”라고 묻자, 그는 “이미 끊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솔직한 건지, 아니면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마약의 중독성에 대해 나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았지만, 면전에서 그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저 “그럼 너 정말 대단하다”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20240420_202546.jpg
20240420_213605.jpg
20240420_215300.jpg
20240420_220723.jpg
20240420_200119.jpg

그는 여전히 젊고, 에너지 넘치는 청춘이었다. 그런 그가 대마와 마약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야기 도중 그는 나에게 “파쳐빌(Paceville)”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몰타의 대표적인 유흥가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한두 번 가본 적 있다”라고 하자, 그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바에 갔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나는 그냥 거리 구경하고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 한 정도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살짝 웃으며 “파쳐빌은 그런 곳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하며, 자신이 자주 가던 특정 바의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상업지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많은 남녀가 모여 술을 마시고, 때로는 선을 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세상 어디나 밤의 유흥문화는 존재하는 법. 나는 여기 몰타에서 1년 가까이 살았지만, 그런 정보는 처음 듣는 터라 조금 늦은 감도 있었다. 남자로서 신기한 마음도 들었고, 언젠가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체류 기간이 이제 20일도 채 남지 않아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셰디에게 그 바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연령대나 분위기는 어떤지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었고,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들을 만났고, 특히 덴마크와 인도 출신 여성과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덴마크 여성과는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인도 여성에 대해서는 냄새가 나서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재차 “정말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냐”라고 재차 물었다. 나는 웃으며 “오늘 처음 들었다. 네가 좀 더 일찍 이사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농담 섞인 답을 건넸다. 그는 내 말을 믿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이전에 함께 살던 칠레 출신 알바로도 이런 종류의 바나 펍에서 밤마다 시간을 보냈기에 자주 늦게 귀가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다른 대륙,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의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밤 문화, 남녀 간의 관계, 성평등에 대한 시각도 우리가 익숙한 기준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셰디와의 대화를 통해 매번 새로운 정보와 몰타의 다이내믹한 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27. 15B 좌석과 20센트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