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포르투갈 포르투 여행 중, 매 끼니마다 빵 위주의 식사를 하다 보니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한국인 입맛으로는 매번 빵만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국물 요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동유럽의 헝가리식 굴라쉬 외에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드물다 보니, 포르투갈에 아벨미와 같이 여행을 온 뒤로 나는 아벨미에게 아시안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고, 그가 동의하여 오랜만에 뜨겁고 매콤한 라면을 함께 먹었다.
몰타에서도 한 번 신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었는데, 아벨미가 한국의 매운맛에 다소 힘들어하는 듯해서 이번에는 비교적 덜 매운 일본식 돼지고기 육수 라면을 추천했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입맛에 맞춘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다음 날 저녁, 나는 이번에는 아벨미의 모국 콜롬비아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처음엔 아벨미가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내가 잘못 느낀 걸지도 몰라’ 하고 넘기려 했지만, 잠시 후 그는 콜롬비아 식당에 가자고 조심스럽게 답해왔다.
내가 콜롬비아 식당을 가자고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몰타 대학 기숙사에서 지낼 때 룸메이트가 자주 콜롬비아 음식을 나눠줬고, 그 맛이 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리운 마음에 다시 먹고 싶었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코초(Sancocho)’라는 콜롬비아 전통 수프 요리를 꼭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벨미도 “그건 좋은 음식이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텔 근처에서 콜롬비아 식당을 찾아 20분쯤 걸어서 도착했는데, 막상 도착한 식당은 내가 기대한 전문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입구는 마치 한국의 오래된 분식집처럼 다소 허름한 느낌이었고, 외벽의 유리창은 금이 가 있었다. 내부는 단출했고, 테이블 5~6개가 놓인 소박한 공간이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한 남성이 유독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험상궂은 인상에 문신도 있는 그 남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시안인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라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벨미는 라틴 출신의 여사장과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눴고, 나는 산코초를 주문했으나 아쉽게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는 메뉴가 없던 나는 아벨미에게 추천을 부탁했고, 그는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대신시켜 주었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우리나라의 백숙처럼 국물이 거의 없는 닭 요리였다.
콜롬비아 음식은 쌀밥을 기본으로, 닭고기나 돼지고기, 바나나, 아보카도 같은 과일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접해 본 터라 거부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당 안에는 15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고, 음악 소리가 꽤 커서 대화가 다소 어려웠지만 그냥 분위기로 넘길 수 있었다.
다만 유독 나를 흘낏거리며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고, 몇몇 손님들의 얼굴에는 피곤하고 예민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초점 없는 눈빛을 하고 있어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벨미의 고향 음식을 맛볼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불편한 기색 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다만, 분위기 탓인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묵묵히 식사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때 아벨미의 수염에 커다란 실밥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여, “실밥이 수염에 걸려 있어”라고 알려주었고, 그는 손으로 몇 번 떼어보려 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떼어줄게” 하며 손을 뻗자,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 도움을 거부했다. 나는 손으로 내 목 부근을 가리키며 위치를 설명했고, 결국 내가 그의 턱 쪽으로 손을 가져갔는데, 그는 그 순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거부했다.
그 모습에 나도 약간 당황했고 기분이 상했다. 언제나 다정했던 아벨미가 식사 내내 예민한 표정이었던 데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니, 나 역시 영향을 받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식사를 시작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여사장에게 계산을 요청했다. 여사장이 음식에 만족했냐고 묻자, 나는 가볍게 “좋았어요!”라고 웃으며 답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외투를 벗고 방에 들어갔는데, 아벨미가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식사 내내 불편한 얼굴을 하더니, 그 모든 불쾌함의 원인이 나였다는 듯 내게 감정을 쏟아냈다.
그는 왜 화가 났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고, 그 내용은 이랬다.
식당 안에서 내가 그의 수염에 붙은 실밥을 떼어준 행동이, 다른 손님들에게 우리를 ‘게이 커플’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어 매우 불쾌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벨미는 “콜롬비아에서는 그런 신체 접촉은 연인끼리만 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설명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정말 넓고 문화는 복잡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단지 선의로 실밥을 떼어주려 했을 뿐인데, 그런 행동이 어떤 문화권에서는 낯선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곳은 콜롬비아도 아닌 포르투갈의 작은 식당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인데 누가 우리를 어떻게 보든 그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벨미와 함께 한 시간이 길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그가 속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어제 내가 동양의 라면을 즐겼고, 그에 응하듯 아벨미는 콜롬비아 음식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을 텐데, 기대만큼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이 그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