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맵’과 ‘마프’ 사이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콜롬비안 아벨미와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한식이 몹시 당겼고, 급하게라도 먹을 수 있는 건 라면밖에 없을 것 같아 여러 라면 중 딱 하나 남은 신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튀니지 출신 셰디가 거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 지었다. 그런데 아벨미가 대화를 이어가던 중, 포르투갈 여행 내내 불쾌했던 점들을 셰디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옆에 있는 자리에서, 그것도 “전반적인 여행이 나로 인해 별로였다”는 식의 말은 듣기에 꽤나 불편하고 불쾌했다. 둘이 함께 떠난 여행이라면 서로 인내하고 배려하며, 때론 상대의 제안을 받아주기도 하고 내 의견을 조심스레 내보이며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그런 기본적인 전제가 무너진 느낌이었다.


아벨미는 예전에 말하길, 콜롬비아에서 몰타에 온 이후 무려 3년 만에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뻘인 나이 차이를 의식해 그의 계획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가 가고 싶어 하는 코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행 중간중간 내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것도 여행의 일부라 여겨 넘겼지만, 돌아온 직후 내 앞에서 제삼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꽤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굳이 얘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아 그냥 참고 넘기기로 했다.


마침 라면이 다 끓어 식사를 하려던 참에 아벨미가 갑자기 포르투갈 리스본 시내의 관광지도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는 “마프, 마프”라고 반복하며 묻고 있었고, 나는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지난주 그가 청소 이야기를 꺼냈던 게 떠올라 “이제 내가 몰타를 떠날 날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청소는 면제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웃지 않고 인상을 쓴 채 다시 “마프, 마프”를 반복했고, 곧 방에서 지도를 꺼내 펼쳐 보이며 “이거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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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map’을 말하고 있었구나 싶어, 나는 “맵(map)”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러자 아벨미는 자신은 ‘마프’가 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질 수 없어 파파고를 켜서 발음기호를 확인해 보여주었고, 거기에는 분명히 “맵”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은 아메리칸 잉글리시라 그렇고, 브리티시 잉글리시는 마프가 맞다”며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사실 이런 식의 발음 다툼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그는 종종 스페니쉬 억양이 섞인 영어를 사용했고, 나 역시 한국식 발음에 익숙해서 가끔 언쟁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땐 “너의 발음은 스페니쉬 스타일이고, 우리나라도 콩글리시가 많다”라고 웃으며 넘겼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지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듯했고, 내 말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이미 발음기호와 실제 발음까지 들려주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여행 중 느꼈던 불만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이제 와서 영어 발음 하나를 두고 누가 맞네 틀리네 따지는 건 다소 뒤늦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데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작은 문제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괜히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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