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던 날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두 가지 활동이 있다면, 하나는 몰타대학교 랭귀지스쿨에 다닌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간중간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벨미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나의 유럽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기 시작했다.


종료일인 1월 22일을 기준으로, 그 일주일 전부터는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작별을 지켜보며 늘 보내는 입장이었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 마음에 밀려왔다.


지난 여름에는 1주일 단위로 수업을 들으러 오는 단기 학생들도 많았는데, 그런 이들에게 굳이 말을 걸고 싶지 않은 적도 있었고,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먼 나라에서 혼자 온 것이 안쓰럽게 느껴져, 매주 첫날 차가운 교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먼저 웃으며 말을 걸고, 담임교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등 분위기를 풀기 위해 노력하곤 했다.


그중에는 1주일 만에 떠난 학생도 있었고, 6개월 이상 함께한 이들도 있었다.
늘 누군가의 마지막 날을 배웅하던 내가, 이제는 그 자리에 내가 서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는 날, 담임교사는 우연히도 내가 몰타에서 처음 만났던 선생님인 케빈이었다.
그동안 Mariyanne, Amira, Dianne 등 여러 교사의 수업을 들으며 대화 능력, 문법, 작문 등 각기 다른 면에서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다시 케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고, 나는 학사행정을 담당한 Karen에게 감사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날 아침,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지만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었기에 허기를 피하고자 근처 식당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샌드위치를 간단히 먹고 학교로 향했다.


지각을 한 적 없는 케빈은 오늘도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맞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10여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몸에서 열이 올라와 답답함이 느껴졌고, 나는 잠시 나가 준비해 온 반팔 옷으로 갈아입었다.

1월의 몰타는 한국의 겨울과는 달리 대략 15도 내외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지만, 유독 나만 더운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팔을 입은 사람은 나뿐이었고, 오히려 몇몇 학생은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몹시 고조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케빈의 설명을 듣고 필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옆자리의 한국 학생이 “마지막 날인데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농담처럼 말해 웃음이 났다.
정말 그랬다. 감정이 과하게 올라온 상태에서 수업에 몰입하다 보니, 몸까지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내가 10대도 아니고 20대 초반도 아닌데, 왜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감정이 이렇게 요동치는 걸까?’


쉬는 시간이 다가오자, 문득 내가 아는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에 나와 있을 때 마침 이전 반 티쳐 Amira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아미라에게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준비해 둔 멘트를 건넸다.

"Today is my last day, I have to leave from Malta tomorrow."

"I was happy to be with you."
"Please don’t go anywhere else, until I come back."


그 말을 들은 아미라는 환하게 웃으며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정이 들었다”며, 나의 건강과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었다.
그 대화를 나눈 후, 정말 언젠가 다시 몰타를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은퇴 후 유럽을 여행한다면, 나는 분명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평소 즐기지 않던 마키아토를 한 잔 마시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케빈은 문법을 설명하면서 중간중간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고, 수업 종료 10여 분을 남겨두고는 짝을 지어 영어 대화를 나누는 활동을 진행했다.

내 마지막 대화 파트너는 프랑스에서 온 21세의 마텀이었다.
우리는 워크북에 나온 8개의 지문에 따라 빠르게 대화를 진행했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대화를 하려니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도 모르게 속도를 냈다.
그도 눈치를 챘는지 나의 속도에 따라 대화를 따라와 마무리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케빈은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한국의 학교처럼 교사가 종례를 하지 않기에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이전에는 수료하는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전통이 있었지만, 최근엔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
나는 사전에 직접 학생들에게 기념사진을 제안했고, 모두 동의해 주었다.

1주일 전에 온 프랑스 여학생은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는지 사진에는 함께하지 않았다.
이곳의 문화와 방식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던 케빈에게 나는 말했다.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꼭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케빈은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며 서로 악수를 교환했다.

이제 학교를 마쳤고,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출발한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즐거움보다는 이곳에서의 1년을 마감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조금 더 준비해서 왔다면, 더 높은 레벨에서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완전 초급에서 시작했던 영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진도를 따라가며 즐길 수 있을 만큼 늘었지만, 수업은 여기서 끝나야 했다.

연장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너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가족이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공부보다는 귀국을 선택했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외국 생활의 외로움이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학교를 마친 후, 1층 로비에서 새로 온 한국 학생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집으로의 귀갓길을 걸었다.


그동안 수백 번 걸었던 이 작은 돌담길을 지나며, 인사를 나눴던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아주머니, 스파크 중고차가 좋다고 말해주던 아줌마, 스낵바에서 일하던 콜롬비아 청년 데이빗, 너무나 익숙했던 풍경이 오늘은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너무 오래전에 학창 시절을 끝낸 탓일까.
오늘의 기분은 마치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취업에 성공한 20대 청년의 그것처럼 벅찼다.
하지만 분명히 달랐다.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 수업을 들으러 갔던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애썼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늦은 나이에 한 나의 도전은, 그 자체로 성공이었다.


완전히 낯선 환경 속에서 갓난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지만, 외국 학생들과 관계를 쌓고,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아벨미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아마도 이 경험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 마지막 한 편만 남았어요.

제자리로 돌아온 소감으로 이번 저의 1년 과정을 마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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