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몰타에 나를 두고 왔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이제는 마지막 몰타의 밤이 다가왔다.
내일이면, 나는 다시 원래의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유럽의 작은 섬나라, 몰타.
그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1년을 비집고 들어와서 작은 내 거처를 마련했고, 그 공간 안에서 나만의 흔적과 나만의 역사를 쌓아 올렸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듯, 이제는 나 혼자서 조용히 빠져나가야 할 시간이다.

아마도 내가 살았던 몰타의 'San Gwann' 내 방은 곧 또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될 것이다.
아벨미와 셰디의 마음속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고, 몰타에서의 나는 그렇게 천천히 잊혀질 것이다.


귀국길은 몰타에서 헝가리 부다베스트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 여정으로 정했다.
저렴한 항공사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 편히 돌아가고 싶어 국적기를 선택했다. 조금 더 비쌌지만, 그만큼 안도감도 컸다.


전날 밤은 제대로 잠들지 못한 듯했다. 아침, 간단한 식사 후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잠에서 깬 아벨미가 나에게 다가와 안아 주었다.
“남자끼리 왠 포옹이냐”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어느새 나도 자연스럽게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건 긴 포옹이었다.

나는 양팔을 벌려 아벨미를 안아주고, 등을 몇 번 토닥였다. 아마도 그도 내가 떠나는 게 아쉬웠을 것이다.


오후 3시 비행기. 짐은 아직 완전히 마치지 못했다. 무게 제한에 맞춰 이것저것 버릴까 고민하다, 아깝지만 다 아벨미에게 맡겼다. 그가 알아서 잘 쓸 것이라 믿었다.

점심은 냉장고에 남은 삼겹살로 준비했다. 남기면 버릴 생각으로 전부 구웠다.
그 모습을 본 아벨미는 와인 한 병을 꺼내어 왔고, 그 덕분에 삼겹살과 와인이라는 조금 묘한 조합으로 작별 식사가 완성됐다.
아벨미가 삼겹살을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만든 쌈을 맛있게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나도 괜히 뿌듯했다.

남겨진 된장, 고추장 같은 한국 소스들은 결국 버려야 했다.
그걸 함께 즐길 사람은 이제는 없었으니까.


1시가 가까워지자, 정말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출근 전이던 아벨미가 내 무거운 백팩을 들어주며 1층 도로까지 배웅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마웠어. Don’t forget me. 언젠가 한국에 꼭 와줘.”
볼트 택시에 올라 창밖을 보니, 아벨미가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참, 짜식. 나도 너에게 정이 많이 들었지. 친구 같기도, 아들 같기도, 가족 같기도 했던 그 마음이 서로 통했던 거겠지.


공항으로 가는 길, 택시기사는 내게 물었다.
“여행 가시는 길인가요, 아니면 몰타를 떠나는 건가요?”

나는 되물었다. “혹시 몰티즈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몰타인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1년 동안 여기 살았어요. 오늘, 몰타를 떠납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몰타 생활, 어땠어요? 좋았나요?”

순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단순히 “좋았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어요.
학생으로, 이웃으로 살며 좋은 일도, 싫은 일도 겪었죠. 그 모든 게 삶의 일부였고, 나는 그걸 그대로 경험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 라이언에어 수화물 무게가 초과되어 50유로를 추가로 내야 했다.
“버릴까?” 망설였지만, 이미 여기까지 들고 온 짐이었다. 결국 요금을 지불했다.

기내 좌석은 통로 쪽, 3번째 줄. 환승을 고려해 배치된 자리였다. 창가였다면 몰타의 섬을 내려다보며 감정이 북받쳤을 텐데, 통로 자리라 그런 낭만은 없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헝가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자가 환승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수화물 찾고, 다시 공항 입구로 나와 체크인과 보안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국적기 체크인 데스크 직원은 다행히 무게 초과를 눈감아주었다.
작은 배려에 마음이 놓였다. “탱큐.” 짧지만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게이트 앞에는 한국인 여행객이 가득했다. 국적기라 그런지 안내방송도 한국어가 먼저였다.
오랜만에,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느꼈다.

비행 중 저녁으로 비빔밥과 와인을 주문했다.
새 잔에 부어진 와인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고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기 위한 의식처럼 생각됐다.


몰타에서 유럽 저가항공을 탈 땐,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승무원들의 시선이 차가웠다.
하지만 국적기 안에서는 나도,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유럽에서의 시간은 내가 이곳에 올때처럼 똑같은 가방 두 개에 담겨 공항 활주로를 빠르게 활주하고 있었다.
몰타에서의 나날은 분명 가볍지 않았지만, 그 무게만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이별과 경험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뿌리 깊게 아시안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뭔가가 있는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유럽 항공사 승무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귀국길에는, 그동안의 쌓인 감정과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한국 국적기를 선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 자국의 언어로 친절한 안내를 받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속에서 돌아가고 싶었다.


기내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했다. 자리에 앉은 청년은 이어폰을 낀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와인 한 잔을 입에 머금은 채 생각에 잠겼다.
몰타에서의 1년이, 떠날 무렵이 되어서야 이렇게 선명하게 나를 감싸온다.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다투고, 또 화해했던 날들.
불편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친해지고 싶었지만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아벨미, 알바로, 피우스, 그리고 셰디.

그 모든 사람들과의 시간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

몰타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그 시간은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 비행기 안, 이 좁은 좌석 위에서 나를 다시 한번 울컥하게 만든다.


깜깜한 창공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나는 긴 잠을 청했고, 착륙 안내 방송에 잠이 깨었다.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멀리서 보이는 인천공항의 조명은 아직도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하다.

나는, 다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잠시 유럽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유럽인이 될 수 없듯이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체취를 뿜으며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내야만 한다.

나의 1년의 유럽 생활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그 빛이 바래져 가겠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유럽에서의 순간을 내 마음속 깊이 담아 두어 언제든 꺼내어 회상해 보련다.


이제 정말 잠시 뒤면 한국 땅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것도 1년 만이다.

1년 전에 유럽에서 살고 싶은 생각에 큰 결정을 내려 유럽 1년 살기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난 다시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솔직히 유럽에 살면서 다시 한국을 그리워했었다.

유럽의 삶은 다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오산이었고, 그곳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었다.

기원 전과 기원 후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화려한 유물을 경험하였지만 결국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우리들처럼 기쁨, 슬픔, 고뇌와 번민을 느끼면서 살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속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난 유럽 생활은 대실패였다.

또다시 현세의 아픔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고 그 아픔의 공간 안에서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마음은 ”세상은 아프고 힘들다. “ 는 라는 말보다 ”그냥 삶이 그렇다. “ ”어쩔 수 없다. “라는 위안으로 내 마음을 다독여 남은 나의 삶을 지탱하여야 한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시간은 내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남겨주었다.

유럽은 나의 이상향이 아니었다. 결국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고단한 일상의 연장선이었다.

실패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 속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살던 시절, 주말이면 새로운 도시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다른 나라를 여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현실의 직장에 복귀해서 재적응에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벌써 몰타에서 돌아온 지 5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5개월 전의 나는 유럽을 그리워하며 돌아왔지만, 이제는 몰타의 햇살과 바람을 품은 새로운 나로, 이 땅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려 한다.

“안녕, 몰타. 고마웠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 친구이자 에세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마지막 장에 남기고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요한, 아벨미, 알바로, 피우스, 셔디

레오나르도, 루이스, 젤렌, 밀랏, 마티아스, 에드가, 올란도, 모하메드, 미리얌, 이첸 한

발린트, 엘리사, 엘라, 루나, 슈테판, 셜린, 헬렌, 사미카

케빈, 다이에나, 아미라, 메리얀, 페트라, 카렌

조이, 마뉴엘, 데이빗, 알렉스, 카밀로, 이안

칸타, 교토 아오이, 삿포로 아오이, 아카리, 모모, 아리사, 하루, 유키, 링쨩, 푸미카

멜리사, 리샌민, 양양, 샤위, 길버트, 제나로, 피콜로, 앙토닌, 대니얼, 무스타파, 와니따, 페트리샤, 후안, 에르네스토, 이브라힘, 나탈리1, 나탈리2


낯선 세상에서의 너희들과 나누었던 추엌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다. 안녕 친구들아,

그리고 고맙다. 유럽의 나의 친구, 형제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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