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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려움을 지나 자신감으로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주중 수업을 마치고,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주말에 특별한 일정 없으면 골든베이로 가자!"는 제안이었다.

몰타 바닷가 중 하나라는 건 알겠지만, 정확히 어딘지는 몰랐다. 하지만 주말에 딱히 계획이 없던 터라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주말이 다가올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예보를 보니 비와 바람이 예고되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밖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외출인데, 이대로 비만 온다면 너무 아쉽겠구나…'
결국 약속을 취소하고 실내에서 조용히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오전 10시쯤,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다시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처음엔 6명이 함께 하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재소집이라 결국 4명만 모였다. 나처럼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가게 된 친구들은 기세끼(일본인), 알윈(독일인), 그리고 내 룸메이트 요한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 친구와 함께였다면 편하게 말동무도 하고, 덜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들과만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모임 장소에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대화를 시작했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4명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순간부터 내가 조금씩 소외되기 시작했다.


기세끼와 알윈은 이곳 어학원에서도 상위 레벨이고, 유럽권 사람들은 영어를 몰라도 문화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듯했다. 반면 나는 듣는 것조차 벅찼다. 빠른 말 속도에 쫓기기 바빴고, 이해가 되지 않자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함께 오기로 한 길, 이 상황에서 혼자 돌아가는 것도 민망했다.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듣기만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대화는 독일 고속열차 '이체', 프랑스의 '테제베' 같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세끼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문득일본의 신칸센 이야기도 떠올랐다.

용기를 내어, "일본 신칸센도 정말 빠르다"라고 한마디 보탰다.
급하게 검색해 보니, 일본이 철도 이용량 세계 1위라는 사실이 나왔다. 간단한 단어로 설명을 이어가자, 친구들도 나를 대화 속으로 끌어주기 위해 노력해 줬다.

그 덕분인지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듣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몰타 서북쪽에 위치한 골든베이에 도착하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바다 풍경에 대한 감탄으로 시작된 대화는 짧고 쉬운 말들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더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두려움 대신 자신감을 가졌다면 좀 더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언어, 문화, 낯선 사람들 속에서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인 기세끼는 정말 영어를 잘했다. 일본인 특유의 발음도 없이, 자연스럽게 원어민처럼 들렸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어릴 때 독일에서 부모님과 살면서 영어를 배웠다"라고 말했다.


"너는 진짜 발음이 훌륭한 것 같아. 원어민 같아."
내 말에 그는 수줍게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문득 말했다.
"내가 좀 더 젊었다면 유럽에서 살고 싶었을 거야. 여긴 국경도 자유롭고, 어디든 이동이 자유롭잖아. 그 자유가 참 부러워."

아시아는 아직도 국경마다 벽이 많고, 쉽게 오갈 수 없다.


만약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오직 그 나라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믿으며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내 룸메이트 요한도 고향 콜롬비아로 돌아가는 대신, 유럽에서 직장을 구해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이해됐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인생의 진리와 조언을 전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한 이야기로.


오늘은 외국인들과 함께한 첫 원거리 여행이었다.
완전히 두려움을 없앤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의 일부를 떨쳐냈고, 조금은 내 안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었다.오늘 하루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두려움을 깨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편안한 날이 올 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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