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한 달 일정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일본인 유키(Yuki)가 얼마 전 내 기숙사에 놀러 왔다.
저녁 무렵이었고, 마침 점심에 기숙사 친구들에게 비빔밥을 해줬는데 재료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유키에게도 "비빔밥 해줄게!" 하고 말하니 그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일본인들이 보이는 예의 바른 태도나 감사 표현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맛에 대한 진심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정중히 "정말 맛있다"라고 말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며칠 뒤, 유키는 그날의 식사에 대한 감사로 나와 요한에게 일본식 저녁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제 19살. 평소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보면 또래답게 장난기 많고 철없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성격을 이해하며 특별히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날, 그는 카레우동을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의 요리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동만으로는 내 식사량에 부족할 것 같아, 한국식 배추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나도 배추 전을 정식으로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보고 자란 기억을 더듬어 뚝딱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보던 이탈리아인 엘리사와 콩고 출신 셜린이 신기하다는 듯 다가와 “그게 뭐냐”라고 묻는다.
조금 나누어 주며 “이건 한국식 전이야” 하고 설명하니, 적당한 간에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키의 카레우동도 드디어 완성되었다.
공용 주방의 낯선 도구들 속에서 다소 서툰 모습이었지만, 완성된 요리를 맛본 순간, 과거에 일본 여행 중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였다.
요한도 연신 “맛있다”며 밥에 비벼 먹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친구 엘리사도 자신이 만든 라자냐를 우리에게 나눠주며 함께 저녁을 즐겼다.
그렇게 한식 배추 전, 일식 카레우동, 이탈리아식 라자냐까지 세 나라가 어우러진 멋진 다국적 저녁 식사가 완성됐다.
유키에게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자, 그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도 고마워"라고 답했다.
출신은 다르지만, 여러 친구들과 함께한 따뜻한 저녁 식사 덕분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공용 키친의 싱크대에서 물컵 하나를 발견했다.
전날 누군가 물을 마시고는 귀찮아서 그대로 뒀던 컵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내가 식사 후 내 그릇을 씻을 때, 옆칸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그릇까지 같이 씻은 적이 있었다.
‘조금만 수고하면 모두가 편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한 유럽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남이 쓴 그릇까지 네가 씻어?"
내가 “괜찮아, 어차피 씻는 김에 같이 하는 거지 뭐”라고 말하자,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내가 아직 유럽의 문화와 습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유럽 친구들 역시, 나의 행동을 낯설게 여길 수도 있다는 걸.
그럼 나는 이곳에서 그들의 문화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한국에서처럼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니, 시간이 많은 내가 조금 더 선행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배려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방식.
그게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