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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루마니안 슈테판의 도발 1 : 가위의 문화 충돌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방학을 포함해 1년을 살아야 하는 이곳에서, 첫 달을 무사히 넘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한 달을 되돌아보면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떠오른다.


등교 날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수업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기진맥진해 돌아와 침대에 쓰러져야 했다. 두통이 심해져 혈압약까지 복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에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룸메이트 요한이 점심을 준비한다고 해서 편하게 앉아 식사를 기다렸다.
밥상에는 삼겹살처럼 생긴 고기와 스파게티, 그리고 콜롬비아식 밥이 함께 차려져 있었다.
고기는 한 줄에 20센티미터는 되어 보였고, 먹기 편하도록 가위를 가져와 적당한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식탁 위에서 가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루마니아 출신의 슈테판이 느닷없이 나에게 다가와 양식용 나이프를 건네며 말했다.
“식탁에서는 나이프를 써야 해.”

그의 돌발 행동에 순간 식사가 멈췄고, 나도 당황스러웠다.


평소 슈테판은 말수가 적고 다소 까칠한 인상이라 내가 편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친구다.
다른 친구들은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웃으며 기다려 주지만, 슈테판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숨을 쉬거나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가 오늘 직접 말을 건 것도, 식사 중에 정색하며 행동한 것도 뜻밖이었다.

생각해 보니 유럽에서는 식탁 위에서 가위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거나 금기시될 수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식탁에서 가위를 사용하는 것이 흔한 일이고, 많은 외국인도 이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슈테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한국에서는 식탁에서 가위를 자주 사용해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어설픈 영어였지만, 내 문화를 설명하고 싶었다.


내가 싫었는지, 아니면 말이 통하지 않아서인지 슈테판은 내 말을 별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조금 억울했지만, 그래도 나름 용기를 내어할 말을 한 것 같았다.

룸메이트 요한에게 슈테판의 성격에 대해 물으니, 그도 슈테판이 꽤 까칠한 편이라며 오늘 상황은 슈테판 쪽의 무례가 맞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혼자서 괜한 행동을 한 건 아닐까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결국 슈테판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평소 나는 반응이 빠르지 않아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지나기 전에 제때, 제대로 내 입장을 설명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런 말은 시간이 지나 따로 하려 하면 이미 맥이 빠지고 말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평소 까칠하던 루마니안 슈테판이 내게 던진 한마디 덕분에, ‘슈테판의 도발’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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