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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말이 통하지 않는 병원, 땀이 줄줄 흐른 하루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던 요즘, 점점 얼굴과 피부에 가려움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이 안 맞는 건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로션이나 스킨을 발라도 증상이 더 심해졌고 결국 병원을 찾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출국 전에 가입한 해외여행자 보험이 있어서, 보험사에서 지정한 병원인 St. James Hospital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몰타는 섬이 작다 보니 병원까지의 거리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고, 안내받은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처음부터 발목을 잡았다.
접수대 직원이 영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녀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영어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멍한 얼굴을 하자, 접수 직원이 내게 스마트폰 번역기 앱을 사용하라고 제스처로 알려주었다.
급히 앱을 켜보니, 해석된 문장은 간단했다.
“응급실은 왼쪽으로 가세요.”

그제야 눈치를 챘다.

이곳 몰타 사람들 역시 자신들만의 억양과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한국식 발음을 콩글리시라 부르듯, 나 역시 이 낯선 억양의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원의 말대로 긴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향해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또 한 번 긴장이 몰려왔다.
이제는 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막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응급실 접수처의 또 다른 직원은 그래도 나를 배려하듯 또박또박한 표준영어로 말해주었고, 다행히 그나마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료 대기 중, 나는 미리 번역기 앱을 켜두고 가려움증과 피부 증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메모하며 준비했다.

잠시 후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와 간호사로 보이는 두 명의 직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의사는 흑인 남성이었고, 나에게 증상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전문적인 영어 표현이 너무 많아 말로 설명하긴 어려웠다.
결국, 내가 준비한 메모지를 꺼내 의사에게 건넸다.


그랬더니 의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더 어렵고 복잡했다.
영어로는 도저히 대답할 자신이 없었고, 번역기를 켜서 질문을 번역해보려 했지만, 인터넷 연결이 느려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대화는 자꾸 끊기고, 나의 답변은 점점 어색해졌다.


‘이래서 병원 진료가 가능은 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피부질환으로 항생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의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고, 나는 결국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했다.


서로 답답한 대화만 이어지다 진료는 마무리되었고, 진료가 끝난 후 받은 처방전 첫 줄에는 Language Barrier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의사도 내 영어 실력에 꽤 애를 먹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다른 의원급 병원에 갔을 때는, 의사가 직접 번역기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화를 이어가는 배려를 해주었지만
이 종합병원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았다.

병원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아프지 말아야지…’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데,
이런 외국 생활 속에서 내가 내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무섭게 다가왔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문제로 병원에 가는 것이 이렇게 불편하지도 않았고,
소통이 어려워 억울한 느낌을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이 먼 나라에서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괜히 나 자신이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오늘, 외국 병원 진료라는 또 하나의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진땀 나는, 잊지 못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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