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유럽 남부 위치한 작은 섬나라 몰타. 도서로서 몰타에서 세 시간 거리인 포르투갈과, 동쪽으로는 비교적 가까운 튀르키예, 그리고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의 리옹, 마르세이유, 스페인 등 다양한 유럽 국가들과 가깝게 위치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약간의 권태를 느끼며, 잠시 휴식을 겸해 시칠리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정한 여행이었고 타이밍을 놓쳐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결국 마지막 날에야 가격이 괜찮은 쾌속선을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함께하게 된 선배는 언론사 출신 은퇴자로 우연히 몰타에서 한두 번 만났을 때 대화에 그리 어려움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여행 동반자로 이어지게 되었다.
시칠리아 남동쪽 포짤로 항구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고 약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유럽 쉥겐조약의 적용으로 입국 심사나 도장 없이도 방문이 가능했다.
시칠리아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니, 생각보다 꽤 넓은 섬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지도를 확인하며 이동 수단을 고민했다. 여름철이라 관광객도 많고, 영어에 자신이 없는 나는 역시 사전 예약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착한 항구 근처에서도 렌터카를 빌릴 수 있었고, 다행히 범위 내 가격에 맞는 차량을 구할 수 있어 안도했다.
잠시 기다린 후, 주행거리 100km도 채 되지 않은 새 차를 배정받았다. 자동 기어 차량이 없어 수동 차량을 선택했는데, 오랜만에 몰아보는 수동 기어는 익숙하지 않아 출발 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고, 신호체계와 로터리를 익혀가며 시내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라쿠사 시내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도로 상태가 고르지 않았고 차선도 좁았다. 일부 도로에는 차선이 없거나 페인트가 지워져 있어, 특히 야간에는 운전이 쉽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몰타에서 익숙해진 좁은 도로 환경 덕분에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작은 차량들이 많은 풍경도 인상 깊었다. 한국의 경차 수준의 차량이 주를 이루었고, 좁은 골목이 많은 구도심에서는 작은 차가 실용적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라쿠사에 도착한 뒤 선배의 제안으로 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시장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들어갔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라 시장은 한산해졌지만, 거리의 식당과 카페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시장 근처 노점에서 시칠리아 특산인 문어 요리와 구운 생선을 맛보기로 했다. 처음 제시된 가격은 15유로였으나 잠시 기다렸다가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10유에 주겠다고 응대해 왔다.
가격을 깎으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의도하지 않게 우리가 가격을 깎으려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이곳 음식의 시세를 모르고 가격표를 써놓지도 않아서 정말 가격이 싼지 의심이 들었으나, 의심해 밧자 이를 알 턱이 없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렴하고 맛있게 먹고 만족하면 그뿐이 아닌가.
간단한 식사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곁들여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사 후 주차장으로 돌아가 출차를 시도했으나, 주차 카드가 계속 튕겨 나와 당황스러웠다. 반복된 실패 끝에, 한 현지인이 도움을 주겠다고 다가왔지만 쉽게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찰차까지 나타났고, 순간 여러 걱정이 몰려왔다. 결국 경찰의 손짓을 따라가 보니, 출구가 아닌 별도의 정산 기계에서 요금을 미리 지불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현지 시스템을 몰랐던 탓에 겪은 해프닝이었다.
출구를 나서며 누군가의 "사요나라"라는 인사를 들었다. 솔직히 ‘나 한국인이야’ 말해 주고 싶었는데 주차비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굳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출구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