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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예상 밖의 만남이 만든 여행의 온기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시칠리아 2일 차 여행은 시라쿠사에서 시작했다. 당초 계획은 여행 안내서에 나온 “라구사”를 목적지로 정하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입구에서 앞차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 뒤 표를 받고 주행을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으로 운전하기에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도로포장 상태는 기대 이하였고 주행 질감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멀리 이동 중 잠이 몰려와 휴게소에서 자주 쉬어야 했는데, 유럽의 휴게소는 한국처럼 크고 편리하지 않아 늘 아쉬움이 남았다. 주유소 크기의 공간에 작은 판매점 하나, 스탠딩 테이블 두 개 정도가 전부였다.


이동 중 목적지를 아폴로 신전으로 변경했다. 유명한 관광지라 가까워질수록 차량과 인파가 늘어났다. 비용 절약을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했지만, 이탈리아어로 된 표지판 탓에 주차 가능 여부가 불분명했다. 마침 주차하던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거주자 전용 구역이라며 다른 곳을 추천해 주었다.

주차 지를 찾아 이동하던 중, 전날 에트나 화산 중턱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부부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낯선 여행지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니, 고향 친구를 만난 듯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부부는 Daniel과 Claudia. 남편은 사진작가, 아내는 의사라고 소개했다.


전날 그들을 현지인으로 착각하고 화산 관련 질문을 했었는데, 그들도 외국인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 Daniel은 한국어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반갑게 반응했다. 우리는 축구 선수 메시를 언급하며 응수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선배가 차에서 가져온 홍삼 스틱을 선물로 건넸다. 생소하고 쓴 맛일 수도 있어 걱정됐지만, 건강에 좋은 한국의 전통 식품이라며 선배가 설명을 덧붙였다.

시칠리아 이카로스


외국인에게는 과한 친절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 말릴 수 없었다. 대신 이후 선배에게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고, 내 설명에 선배도 이해했다.

아폴로 신전을 함께 둘러보고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후 각자 관광에 나섰다. 신전은 도심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아마도 지하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해 복원한 것으로 보였다. 높고 크던 기둥은 무너져 있었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역사적 맥락 없이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은 의미가 반감되었다. 우리는 사전 지식이 부족해 이곳이 아폴로 신전이라는 사실조차 아르헨티나 부부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폴로 신전과 시라쿠사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었고, 일부는 복원된 건축물이었다.


해설이 없어서 유적보다는 인접한 바다 풍경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음료와 함께 여행의 여유를 만끽했다. 카페 연주자의 음악, 주위의 외국인들, 눈앞에 펼쳐진 바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유럽의 한 일상 속에 섞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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