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오늘은 3월 20일 수요일. 전날이 국경일이었던 덕분에 주중 하루를 더 쉬게 되어,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몰타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안정되어 가며 내 생활도 조금씩 현지인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동행자와 시칠리아 여행을 했을 때도 문득 그런 감정이 스쳤지만, 특히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요한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 서로에 대한 미묘한 불편함이었다.
한 방에서 두 명이 생활하다 보니 잠자는 시간, 기상 시간, 화장실과 공용주방을 사용하는 시간까지 겹치는 일이 많았다.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의 현실적 불편함이 조금씩 내 안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먼저 일어난 나는 화장실을 사용한 뒤 요한이 사용할 것을 대비해 물을 두세 번 내려 청결을 유지하려 애쓴다. 세면대에 남은 물때도 손으로 닦아내며 티 나지 않게 관리한다. 요한은 따로 불평을 하진 않지만, 요한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소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기분에 때로는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요한 역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나에게 말이 줄었고,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요한아, 정신 좀 차리고 내 말 좀 들어줄래?”
마음속에서 작은 짜증이 올라오고, 급히 도움이 필요했던 어느 날 그에게 보낸 메시지에 답이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답장을 안 하지? 평소엔 빠르게 반응하던 아이였는데."
“혹시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거나, 나쁘게 말하면 만만하게 보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그간 요한이 나에게 베풀었던 수많은 좋은 기억들이 한두 가지 불편함에 묻혀 흐릿해졌다.
"왜일까? 인간의 감정은 왜 처음과 다르게 수시로 변하고, 처음엔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점점 눈앞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걸까?"
그 질문은 나를 한국에서의 관계들로 이끌었다. 친구, 동료, 배우자, 자녀들과 얽혔던 감정의 수레바퀴.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는 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다. 본전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기대가 생기니 조건 없는 여유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 7시 30분. 문득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해답은 여전히 멀고 고민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