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눈치 보지 않는 삶
아침, 눈을 떠보니 또다시 5시.
매일 같은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제는 내가 시계가 된 듯한 기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공용 룸에 나와 홀로 앉아, 오늘 공부할 페이지를 펼치고 예습을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책을 펴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내가 몰타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도중 그 친구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서 이렇게 생활할 수 있는 건, 너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결과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23년 직장생활이 스쳐 지나갔다.
세세한 장면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오래 한 직장에 몸담았던 삶이었다.
입사 당시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적응하기 바빴고, 입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엔 갑자기 회사에 가기 싫어 무단결근을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처음엔 그저 일이 익숙하지 않아 정신없이 지냈고, 시간이 흐르며 조직에도 익숙해졌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 속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말 섞기조차 꺼려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특히, 나를 무시하거나 어린아이 취급을 하며 휘두르려는 선배들, 그런 사람들을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엔 회식도 많았고,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자리가 많았다.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듣기 싫은 말도 웃으며 들어야 했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감정이 들키면 또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조직 생활이란 결국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이 힘든 것임을 그때 알았다.
한번 꼬인 관계는 되돌리기 힘들고, 감정의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조직에 있으면서 좋았던 기억도, 상처받았던 순간도 뒤섞여 지금은 도무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질서를 만들어간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모든 걸 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젊은 직원일수록 퇴사를 꿈꾸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막상 돌파구를 찾으려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결국엔 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선배와 상사, 심지어 기관장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들의 기분까지 살피는 삶을 살고 있었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은 상사의 기분을 맞추고 분위기를 잘 읽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여유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남에게 비굴해 보이지 않는 선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물론,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며 오직 자신의 입지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삶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왔던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조직 생활 속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지 않을까 싶다.
남들은 그래도 내가 조금은 다르게 살았다고 말하지만, 나 스스로 돌아봤을 때 그다지 달라 보이진 않았다.
이곳,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몰타라는 작은 섬.
직장도 떠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한 발 물러나 삶을 돌아보며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곱씹어 본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확신을 갖지는 못했지만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외국 생활이 끝날 무렵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남은 직장 생활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또 고민하게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한국에 남겨둔 대출금과 빚이 현실적인 문제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내가 주인인 삶’,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