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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그녀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오늘은 일본인 여학생 아리사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최근에야 가까워진 친구라 정이 깊진 않았지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나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직 몰타에 온 지 세 달도 채 안 됐는데 말이다.

“공항까지 같이 가줄까?” 내가 묻자, 아리사는 놀란 얼굴로 “정말? 너무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점심에 다른 일본인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같이 식사하자고 초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 근처 피자집에서 모여 피자를 먹었다.


식사 후, 아리사가 집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꺼내왔다.
백팩까지 멘 그녀는 “큰 캐리어가 20킬로 넘지 않게 짐을 나눴다”며 웃었다.
직접 들어보니 20킬로의 무게가 꽤 묵직했다.
이걸 혼자 들고 버스를 탔다면, 체구 작은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을 게 분명했다.
내가 함께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받는 게 미안했던 건지 아리사는 자꾸 자기가 들겠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캐리어를 들었다.
그녀의 태도를 보며, ‘역시 일본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는, 그런 전형적인 배려심.

학교에서 공항까지는 버스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 아리사는 “벌써 도착했네…” 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아리사, 그냥 가지 말고 우리랑 계속 놀자~” 내가 장난을 치자,
그녀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진짜 가기 싫어…”라고 대답했다.

짐을 부치고 나니, 아리사가 갑자기 자신의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환불받은 공병 영수증 두 장을 꺼내며 “이거 0.20유로인데, 바꿔 쓰면 돼!”라며 내게 건넸다.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나도 환불받으려 했던 적은 있지만, 금액이 워낙 적어서 매번 그냥 버렸다.
그런데 그 0.20유로를, 아리사는 소중하게 챙겨 나에게 주었다.

금액은 적었지만, 마음이 커서 고마웠다.
나는 영수증을 받아 들고, “고마워!” 하고 활짝 웃어주었다.


입국장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리사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리사도 멀어져 가면서, 손을 흔들며 밝게 웃어주었다.


사실, 오늘 내가 공항까지 따라나선 건 아리사의 환송 때문만은 아니었다.
몰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공항을 제대로 구경해보지도 못했다.
미리 예약한 택시기사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도착하자마자 곧장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온 공항은 조금 특별했다.


몰타에 하나뿐인 작은 국제공항이지만, 출도착 모니터엔 빽빽하게 비행시간표가 들어차 있었고,
곳곳에서 이착륙을 알리는 방송 소리가 들렸다.

출국장 대기실을 둘러보며 잠깐 커피를 마실까 고민도 했지만,
동네 카페처럼 아늑한 곳도 아닌 데다 가격도 비싸 보여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비행기 한 대 떠나는 걸 구경하며 아리사를 떠나보내고,
나는 혼자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다시 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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