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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4라운드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집주인과의 트러블로 마음이 복잡했다.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학교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기 싫은 마음에 기숙사 룸메이트 요한에게 연락을 해 저녁을 함께 먹었다. 요한은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주었다. 그의 조용한 배려가 위로가 되었다.


밤 9시 반쯤 집에 들어오니, 거실에 앉아 있던 집주인 에밀리가 나를 보며 다가오더니 내 방 입구까지 따라오며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대화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어, 마지못해 말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지인을 통해 “아타드(Attard)”라는 동네에 월세 400유로짜리 집을 알아봤다며, 그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사를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타드’가 어디인지 구글지도로 확인해 보니, 학교까지 버스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그 거리와 교통을 매일 감당하며 다니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번처럼 집주인이나 룸메이트와 트러블이 생기는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면, 이사는 내가 직접 내 기준에 맞는 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입장을 설명했더니, 에밀리는 화가 난 듯 “그래도 이사는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더는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걸로 생각한 건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더는 그녀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감정 소모 속에서 또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결국 아무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방문을 닫은 뒤, 2~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갇힌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이 작은 방에서 아침까지 어떻게 시간을 버틸지 막막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까 했지만, 몰타의 밤공기는 차고 바람도 세게 불어와 오래 열어둘 수 없었다. 게다가 주택가라 밤이 되면 가로등조차 희미해 창밖을 본다 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새벽 2시쯤 고양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에밀리의 고양이는 털이 복슬복슬한데, 내가 이 집에 들어온 후 몇 번 마주친 적 있었지만 항상 나를 보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땐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낮고 약한 소리로 운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고양이가 한밤중에 울어도 아무 제지 없이 부엌에 밥과 화장실을 갖춘 케이지를 항상 준비해 두었다. 고양이의 작은 불편함까지 세심히 챙기는 그녀가, 같은 집에 사는 나에게는 전혀 그런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녀는 나에게 “동양인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편견을 갖고 있을까 싶어, 나의 고향인 한국의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 사진 등을 보여주며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말투, 태도, 무심한 반응들을 보며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 안에는 여전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던 그 새벽,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집주인의 밤늦은 작업 소리도, 그리고 나의 생리현상까지 모두 참은 채,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방문 하나 너머로 느껴지는 그 사람의 존재와 공기가 너무 무거워, 새벽의 찬 공기보다도 더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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