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6. 무심한 클릭, 깊어진 거리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새 집으로 이사한 후, 휴일마다 하우스메이트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친해졌다. 농담도 주고받고, 서로의 궁금증을 묻고 대답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법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날도 여느 휴일처럼 늦게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있던 중, 한국인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초대했고, 하우스메이트들에게도 괜찮겠냐고 묻자 모두 좋다고 했다. 나는 손님 맞을 준비로 집을 정리하고 과일과 음료, 약간의 와인도 준비했다.

한국에서는 와인을 거의 마셔본 적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슈퍼마켓 주류 코너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보르도 와인”을 발견했고, 다른 와인들이 2유로도 되지 않는 것에 비해 조금 더 나은 걸 대접하고 싶어 그것으로 골랐다.


그날 아벨미는 외출 중이었고, 집에 있던 알바로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를 한국인 부부에게 소개하고 함께 과일이라도 먹자고 했지만, 처음 보는 한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며 그는 동석을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인 부부 중 남편은 은퇴자였고, 아내는 현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은퇴한 남편이 아내를 따라 몰타대학까지 오게 된 이야기며, 고향과 자녀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다.

그사이 알바로는 방 안에 있다가 시끄러웠는지, 혹은 우리가 손님을 맞고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외출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2시간 정도가 지나고, 부부도 자리를 뜨겠다고 하여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나니 문득, 알바로가 특별한 약속 없이 외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손님이 돌아갔다는 문자를 보냈다.

조금 후, 알바로에게서 답장이 왔다. "지금 길에 있는데, 언제 돌아갈지는 모르겠다."는 짧은 메시지였다.


괜히 그가 나 때문에 외출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알겠다. 빨리 돌아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곧, 그런 말투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아닌데, 친구에게 지나치게 간섭한 듯한 느낌이 들어 다시 “빨리 돌아오라고 해서 미안하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알바로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20240413_174513.jpg


하지만 알바로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폰을 들여다보며 검색도 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둘러보았다.

전날, 아벨미와 알바로 모두와 SNS 계정을 맞팔로우 했고, 서로의 친구 목록도 공유하며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떠올랐다.


알바로의 친구들 중에 멋진 친구가 보여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알바로는 조금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더는 묻지 않기로 했고, 그 이야기도 거기서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알바로의 페이스북을 다시 찾아보니 어느새 우리 사이의 맞팔로우가 취소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전날 내가 그의 친구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 신경이 쓰였던 건 아닐까. SNS에서는 친구 목록이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알바로는 그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반응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또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문화 차이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으니까.


어찌 되었든, 지금은 무슨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냥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밤 9시쯤 알바로가 귀가했고,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인사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번 휴일도 저물어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5. 일요일 아침, 낯선 일상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