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오늘 문득, ‘미움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해를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수없이 이별하며 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용서하려 애썼고, 잊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풀리지도 않고, 내가 잊는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까지 정리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꼬여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요한과도 그랬다. 몰타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룸메이트, 그리고 친구. 매일 마주하고, 매일 톡으로 안부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최근엔 이틀이 넘도록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학교에서 브레이크타임에도 강의실에만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서로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치는 일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요한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몰타에 와서 가장 먼저 의지하게 된 사람이었고, 나 역시 요한에게 형이자 어른으로서 조언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기에, 실망과 분노로 이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4월 19일 금요일,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고고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벨미에게 추천을 받아 모스타, 세인트 폴 베이, 멜리에하 등의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함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몰타는 섬나라라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급변한다. 잠시 여행을 포기하고 학교에 갈까 고민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느지막이 외출 준비를 마치고 여행을 시작했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몰타의 버스 시스템에 당황해 첫 버스를 놓쳤다. 버스가 눈앞에 도착했지만 맞는 노선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정류장으로 이동해 겨우 모스타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도시 외곽을 지나며 ‘발레타나 슬리에마 같은 중심지 외에도 이렇게나 삶의 공간이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모스타 성당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돔 형태의 천장이 햇살을 받아 안쪽을 비추는 모습은 성스러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이 성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으로부터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어떤 날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숨어 있었는데, 그때 독일군이 투하한 폭탄 하나가 성당 천장을 뚫고 들어와 안에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폭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기적 덕분에 이 성당은 더욱 유명해졌다.
성당 안에서 예수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을 감상하며, 마음 한편이 울컥했다.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그 고통과 박해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예수라는 인물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요한에 대한 이 미움도 여기서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헌금을 하고 양초에 불을 밝혀 요한을 위해 기도했다.
얼마 후 요한에게서 톡이 왔다.
“당신은 나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가요?”
아마도 내 평소와 다른 반응에 요한도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성당에 와 있어. 너를 위해 불을 밝혔어.” 라고 답했다.
요한은 “정말 고맙다.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 라며 감사를 전했다.
서로의 감정을 채팅으로만 풀기엔 부족하다고 느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고 요한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고, 여행을 마치고 오후 5시에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후에도 여행을 이어갔지만, 마음속 불편한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멜리에하 케슬을 가려 했으나 너무 멀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마지막 목적지를 교회로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5시 정각에 도착해 요리를 준비하며 기다렸지만, 요한은 오지 않았다.
오늘 여행으로 조금 피곤했는지 잠깐 눈을 붙였고, 깨어보니 저녁 7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화가 났다. 당일 몇 시간 전에 정한 만남이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건 너무 무책임했다.
칠리안 하우스메이트 알바로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하니, “유럽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 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동양인으로서 갖는 약속에 대한 가치, 그걸 요한도 알고 있었기에 더 서운했다.
오후 8시가 넘어 요한에게서 “오늘 바빴어” 라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너의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나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요한은 피곤했는지 내 말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나도 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날 밤까지도 요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요한은 장문의 메시지로 사과했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사과는 아니었지만, 나를 존중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를 이해해줘서 고맙다.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다. You are my son, Johan.”
요한의 사과에 미움을 내려놓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저녁, 요한은 스파게티를 해주겠다며 나를 초대했고, 나는 기꺼이 기숙사를 방문했다.
퍼블릭 키친에는 요한 외에도 발린트, 엘라, 슈테판이 함께 있었다. 나를 본 요한은 나에게 다가와 평소와 다르게 허그를 했다. 한국인인 나에게는 다소 낯선 인사였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포옹을 받아주었다. 그 순간, 그를 미워했던 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기숙사에 오랜만에 들렀다며 발린트가 맥주를 건네주었고, 우리는 스파게티와 함께 반주를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의 진폭이 컸던 지난 일주일.
그 감정을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둠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