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아벨미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다음 주에 월세 내는 날이에요.”
그 말에 비로소, 이곳에서의 한 달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벨미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29살. 약 2년 전 몰타에 와서 사설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뒤, 현재는 한 호텔에서 리셉션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키가 크고 피부가 검은 외모에 선뜻 친근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을 함께 지내면서, 그의 성격 속에 배어 있는 친절함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호텔 프런트에서 쌓인 친절함이 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듯, 그는 항상 정중하고 따뜻하게 나를 대했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고마움을 느꼈다.
플랫메이트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언어보다 더 빨리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식'을 선택했다.
아직 영어가 서툰 내게는, 음식이 훨씬 솔직하고 효과적인 언어였다.
한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맵다'는 인식이 몰타와 외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칠레 출신인 알바로는 내가 음식을 만들기 전, 늘 “맵니?”라고 먼저 묻곤 했다.
왜 한국음식이 ‘맵다’는 이미지로만 알려졌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만들어 주면서 하나씩 설명하고 오해를 풀기로 했다.
배추전, 김치전, 잡채 등 상대적으로 순하고 현지 재료로도 쉽게 응용할 수 있는 한식 메뉴들을 준비했다.
덕분에 친구들은 “맛있다”며 잘 먹어주었고, 나에게 고맙다는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음식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한국 음식이 모두 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저녁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밥과 김치, 삼겹살, 그리고 간편하게 끓인 된장국을 곁들여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아벨미가 내가 만든 된장국에 흥미를 보이며 다가왔다.
“맛볼래?” 하고 묻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접하는 음식이기에 많이는 주지 않고, 다섯 숟가락 정도 작은 그릇에 덜어주었다.
김치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된장국은 아직 생소한 편이다.
된장은 발효된 콩으로 만든 장으로, 일본의 미소된장국과도 다르고, 특유의 깊고 구수한 맛이 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아벨미는 맛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예의인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좋게 말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는 평소에도 기분이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된장국은 한국인의 평범한 식사에 빠지지 않는 국이에요. 밥과 반찬이 차려질 때 늘 함께 있는, 아주 익숙한 음식이죠.”
짧은 설명이었지만, 아벨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모습에 또 한 번 따뜻함을 느꼈다. 같은 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밥 한 끼를 나누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은 결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