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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이 정도면 진열 안 해도 되지 않나요?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에 오기 1년 전에 핸드폰을 사용해 온 탓으로, 슬슬 배터리 수명이 아슬아슬해졌다. 한국이었다면 5~6만 원이면 뚝딱 새 배터리로 갈았겠지만, 여기는 섬나라 몰타. “혹시 삼성 서비스센터가 있긴 할까?” 싶어 구글링도 해보고 요한에게도 물어보니 “Service Fix”라는 대리점을 알려줬다. 정식 삼성센터는 아니지만 수리는 가능하다고


마침 금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날씨도 좋아서, 전자제품 매장 근처라는 위치를 보고 산책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도보 20분, 나쁘지 않다.

걸어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갤럭시 반, 아이폰 반. 그런데 몰타에선 좀 다르다. 학교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아이폰을 쓰고, 시내에서 만난 현지 노동자들은 주로 샤오미나 레드미 같은 중저가 중국폰을 쓰고 있었다. 프리미엄폰과 중저가폰의 기능 차이도 점점 사라지는 요즘, “비싼 폰이 꼭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하우스메이트 알바로는 내 삼성폰을 볼 때마다 “와, 너 진짜 비싼 폰 쓰는구나!”라며 놀라곤 했다. 여긴 삼성도 프리미엄 브랜드다.


서비스픽스에 도착해 보니, 삼성 간판은커녕 그냥 ‘개인 수리점’ 느낌이었다. 배터리 교체비를 물으니, “100유로.” 잠깐, 100유로면 거의 15만 원인데?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정식 서비스센터도 아닌데 이 가격이라니,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배터리 수리는 포기. 그냥 당분간 충전기를 더 자주 들고 다니기로 했다.

대신 근처 전자제품 매장을 들러 보조배터리를 하나 사기로 했다. 다음 여행 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위치는 10분 거리. 기대는 반, 구경은 전자제품 애호가로서의 본능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웬만한 브랜드는 다 있었다. 삼성, 애플은 물론이고, 샤오미, 오포까지. 디자인도 제법 괜찮고 가격도 꽤 저렴했다. 중국 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겉모습으론 절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좋았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보조배터리를 찾아 코너로 가보니, 이게 웬일? 전부 진열장 안에 있었다. 마음대로 들어보고 비교해 보는 건 꿈도 못 꾼다. 그냥 유리장 너머로 구경만 할 수 있다. 결국 직원한테 “이거 꺼내 주세요”라고 부탁해서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가격이 고작 32유로. 우리 돈으로 5만 원도 안 된다.
“이걸 왜 진열장 안에 넣어두는 거지?”

보안? 뭐 그럴 수 있겠지만, 한국 같았으면 그냥 계산대 근처에 대충 쌓아두는 제품이다. 고객 경험보다 ‘보관’이 우선이라는 문화, 조금 생소했다.


더 황당했던 건, 매장 안에 직원이 엄청 많았다는 점이다.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느낌이랄까. 뭔가 중요한 제품을 고르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연 이 작은 보조배터리 하나에 그렇게 많은 리소스를 쏟아야 하는 걸까?

몰타에 살아보니, 이런 문화적 차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게 된다.


어떤 건 신기하고, 어떤 건 조금 불편하고, 또 어떤 건 그냥 웃기다.

하지만 단순히 “불편하다”라고 말할 순 없다. 여긴 인구 50만의 작은 섬나라. 전자제품도 대부분 수입이고, 제조 기반이 없다 보니 당연히 귀하고,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건 나쁘다기보단, 그냥 다른 거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연습.
그게 어쩌면, 해외 생활의 가장 큰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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