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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피자와 와인, 그리고 콜롬비아 의사 이야기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오늘도 평소처럼 영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이 모두 집에 있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얼굴 마주치기 어려운 일인데, 수요일 평일 저녁에 모두가 함께 있다는 게 낯설고도 새롭게 느껴졌다.


아벨미는 오늘 대청소를 하는 날이라고 했지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혼자서 집 안 구석구석을 말끔히 청소해놓았다. 예전에 그와 함께 청소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얼마나 꼼꼼하게 청소를 하는지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오늘도 역시, 그의 완벽주의 덕분에 나는 편하게 앉아만 있어도 되는 게으른 평화를 누렸다.


저녁 무렵, 알바로는 자신의 친구가 잠시 집에 들를 거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다만 이미 친구가 현관문 앞에 거의 도착한 뒤였기에, 내가 반대의사를 밝힐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나는 흔쾌히 “언제든지 초대해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방문한 친구는 콜롬비아에서 온 샤리프 오스만이라는 사람이었다. ‘샤리프’는 낯설었지만, ‘오스만’이라는 이름에서 왠지 모르게 아랍 느낌이 느껴져 그의 배경을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아랍계로 콜롬비아에 이민을 왔다고 했다.

청소에 진심인 아벨미


나는 거실 테이블에서 과제를 하느라 계속 앉아 있었고, 알바로와 샤리프는 방에 있다가 마트에 다녀온 뒤 피자와 와인을 꺼내 거실에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남자들끼리 모이면 보통 라면 같은 간편식을 먹곤 하는데,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방금 마트에서 사 온 냉동피자를 오븐에 데우고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대신했다.


샤리프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본인도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불고기 사진을 보여주며 “진짜 맛있었다”라고 말하길래, 다음에 미리 알려주면 내가 불고기를 준비해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샤리프도 “꼭 그런 기회를 갖고 싶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였고, 두 사람은 내 바로 옆에서 피자와 와인을 나눠 먹었지만 나에게 한 조각 권하지는 않았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아마 이곳 문화에서는 그런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샤리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콜롬비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했고, 내가 이유를 묻자 알바로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그 분위기에서 샤리프도 게이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 묻지는 않기로 했다. 괜히 선을 넘을 수 있으니까.


그 대신 나는 그의 직업 이야기를 더 깊이 물어봤다. 그는 콜롬비아에서 의사의 월급이 정부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생각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높은 소득이 보장될 것 같은 의사라는 직업도, 지역과 제도에 따라 처우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다가왔다.


샤리프는 알바로의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거실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영어는 알바로보다 또렷하고 명확해서 내가 이해하기 훨씬 수월했다. 한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내가 콜롬비아식 영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서로의 말이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2~3시간이 훌쩍 지났고, 샤리프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정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그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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