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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불쾌했던 모든 날을, 오늘로 갚았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전에 살던 에밀리의 집은 지금 내가 사는 곳과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언젠가는 마주치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도 아니고, 지금은 다시 만나도 꿀릴 게 없는 입장이라 생각했기에, 언젠가 마주치게 된다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냉소적인 태도로 대하리라 다짐했었다.


특히 그녀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곳이 집 근처의 ‘리들 슈퍼마켓’이었기에, 그곳을 갈 때면 주변을 은근히 살피며 긴장 속에서 쇼핑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리들에 여러 번 갔지만, 에밀리를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고, 덕분에 점점 그녀를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몰타 대학교 부속 병원인 ‘마터데이 병원’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던 중, 익숙한 색깔의 차량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번호판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차의 색과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하얀색 차량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무심코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했을 때 그건 바로 에밀리였다.

나도 그녀를 알아봤고, 그녀도 나를 본 것 같았다. 서로 의도한 것도 아닌데,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당황한 표정을 눈으로 읽을 수 있었다.

해질 무렵의 Sliema


나는 내 표정이 어땠는지 알 것 같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평소라면 웃고 넘겼을지도 모를 감정들이, 그 짧은 순간에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을 것이다. 불쾌하고 서운했던 감정들

그 집에서 함께 지내던 모든 시간이 다시 떠올랐고, 마주친 그 찰나에 폭발하듯 얼굴로 표출되었다.


아마도 그녀도 그걸 읽었을 것이다. 불편한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도 스치듯 드러났고, 그 짧은 눈 맞춤 속에서 모든 감정이 교차되었다.


룸메이트 요한은 이전에 “만나도 그냥 모른 척해”라고 조언했지만, 이렇게 불쑥 마주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튀어나온 이 감정은, 억누를 틈도 없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떠올랐다.


돌아보면, 에밀리는 이미 내가 그녀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사람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읽는 그녀가 내 얼굴에서 그 감정을 놓칠리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암울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녀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날의 내 기억만큼은 말보다 더 깊고 날 선 감정으로 드러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감정적으로는 분명 의미 있는 ‘복수’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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