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함께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친구들’이라는 말이 입에 붙는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 편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말이 편하다. 함께 사는 친구들도 언제나 ‘friends’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써주기에, 몰타에서의 삶 속에서 이 말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익숙하고 편안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나는 본과생은 아니지만 몰타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있고,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이로 구분 짓는 일이 점점 의미 없어졌다. 다 함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했다.
여기서는 직책이나 나이보다는 ‘지금 함께 존재하는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었고, 낯선 땅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조금은 덜해졌다.
San Gwann이라는 지역의 한 주택에서, 한국인인 나와 콜롬비아인 아벨미, 그리고 칠레에서 온 알바로 이렇게 세 명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이 조합은,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만남도 어떤 우주의 장난 같고,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 만남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중 칠리안 알바로는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다소 까칠한 면이 있는 친구다. 처음에는 내가 무심코 예전 습관처럼 그를 대했나 싶어, 스스로 반성도 해보게 됐다.
며칠 전, 알바로가 일찍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던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외출 준비를 하기에 나는 습관적으로 “어디 가냐?” 하고 물었는데, 알바로는 조금 날카롭게 되묻듯 말했다.
“Are you my father?”
아무 생각 없이 건넨 말이었는데, 알바로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아니면 평소 나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내가 너무 참견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알바로와 거리를 조금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말도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알바로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늘이 월요일 밤이니, 벌써 지난 금요일 이후로 나흘째다. 직접 연락을 해볼까 고민했지만, 얼마 전의 일도 있고 해서 선뜻 전화하기는 망설여졌다. 대신 아벨미에게 물어보니, 하지만 “자신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던 중 오늘 내 인스타그램에 알바로가 좋아요를 눌렀다. 그 틈을 타 나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한 집에 사는 친구니까 네 안부가 궁금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그러자 잠시 뒤, 알바로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다음 달에 돌아갈 거야.”
그게 전부였다. 이후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혹시 칠레로 돌아간 건 아닌지, 아니면 밤늦게 놀다가 사고라도 난 건 아닌지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아벨미에게 물었지만, 그 역시 “연락이 없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알바로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