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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티처 케빈의 속삭임, ‘레벨업 됐어요’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어제 본 레벨 테스트 때문인지, 아니면 방에 들어온 모기 때문인지 새벽 2시에 잠에서 깼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3시간 넘게 뒤척이다가, 오늘은 학교에 가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티처 케빈이 수업 중에 내가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실망할까 봐,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혹시 오늘이 그의 우리 반 마지막 수업일 수도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고, 7시쯤 다시 눈이 떠졌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혹시나 간신히라도 레벨업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수업을 빼먹는 것이 오히려 케빈과 반 친구들에게 더 미안한 일일 것 같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학교까지 10여 분을 걸어가며 온갖 생각이 몰려왔다.
시험 채점은 케빈이 직접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았다. ‘혹시 불합격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고, 케빈에게 미리 “점수가 안 나왔더라도 이해해 달라”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3개월 넘게 케빈과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객관식은 몰라도 작문과 말하기에서는 어느 정도 발전이 보이지 않았을까? 조금 부족하더라도 상급 반으로 옮겨주지 않을까 기대도 됐다.

기분은 착잡했다. 어제는 시험을 망쳤다는 자책감에 우울했고, 오늘은 오만가지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교실 전등과 에어컨을 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런데 평소보다 반 친구들이 하나둘 일찍 도착했고, 콜롬비아에서 온 나탈리가 내 옆자리에 앉아 시험에 대해 물었다. “정말 어려웠어”라고 말하자, 그녀는 무언가 예상한 듯 나에게 “다음번엔 문법 부분을 잘 보고 준비해야 해”라고 조언해 줬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케빈이 교실로 들어왔고, 내게 다가와서는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레벨업 됐어요.”

그 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제 분명히 케빈에게 “레벨업에 큰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고 “선생님 수업을 더 듣고 싶다”라고 했던 터라, 아마 그 말이 케빈의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현실감이 없어서 수업 내내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는데, 2교시가 시작되자 케빈이 반 친구들에게 '다음 주부터 수업을 담당하지 않게 됐다'며, 다른 교사가 올 예정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곧바로 “나도 레벨업이 됐다”라고 반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해 줬다.

기뻐야 할 순간이었지만, 만족스러운 점수로 올라간 것이 아니어서 친구들의 축하 인사에도 크게 들뜨지 못했다. 그냥 조용히, 겸손하게 웃어 보였을 뿐이다.

몰타의 고성에서


레벨이 올라가면 교재의 난이도도 더 높아지고 공부할 양도 많아질 텐데, 지금도 예·복습에 히어링까지 하느라 하루가 빠듯한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또, 3개월 넘게 함께했던 반 친구들과의 이별이라는 사실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쓸쓸했다. 집에 돌아와 새 교재를 펼쳐보니, 정말 내용도 어려워 보이고 글씨 크기마저 작게 느껴졌다.


걱정이 앞서 일본인 친구에게 새 반의 진도와 분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어제부터 이어진 걱정과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서 공부한 지 4개월이 넘은 지금, 나도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이곳에 와서 공부를 시작할 때도 망설임 없이 그냥 돌진했었다. 이번에도 결국 그렇게, 한 등급 올라가게 되었고, 뭐... 앞으로도 어려운 게 있겠지만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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