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Jay로 다시 태어나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에 온 뒤, 조상님과 부모님께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내 이름을 슬쩍 바꿨다.
이곳 사람들이 조금 더 말하기 쉬운, 조금 더 기억되기 쉬운 이름으로.

한국에서 출국할 때부터 미리 내 이름에 대해서 고민은 했었다.
“이름을 뭐라고 소개하지?”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명쾌한 답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이름.
‘San Gwann’, 몰타 사람들에겐 '산주안’이라 불리는 그 동네.

어느 날, 수업 중 티쳐 Macro가 또 내 이름을 까먹고 헤매길래
“산주안처럼 불러요. 그게 더 기억하기 쉬울 거예요.” 하고 말했더니,
정작 그는 이름이 아니라 지명 그대로 “산주안~ 산주안~” 하며
마치 동네 이름을 장난치듯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내 이름은 '사람'이 아니라 '지도 속 동네'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웃으며 넘겼다. 이름 하나로 수업시간이 매끄러워진다면, 나야 고맙지.


하지만 한편으론 좀 찜찜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
그래서 다시 고민했다.

그리고 드디어, Jay.
간단하고, 세 글자고, 누구나 부르기 쉬운 이름.
그날부터 나는 Jay가 되었다.


이름을 바꾸고 나니 놀랍게도,
친구들은 한 번에 기억했고, 더는 되묻지 않았다.
무의식 중에 내 존재가 조금 더 명확하게 자리 잡는 느낌이었다.


한국 이름은 아름답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한자에 얽힌 뜻도, 자음과 모음도
이곳 사람들에겐 낯설기만 했다.


우리말의 부드러운 모음이
이들에게는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영어와는 구조부터 다르니까.

우리는 동사를 끝에 두고, 이들은 동사를 먼저 말한다.
언어는 곧 사고방식이고,
내 이름을 부르는 그들의 방식도 결국 그들의 사고방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몰타의 San Gwann에서
Jay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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