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몰타에서 출국하거나 입국할 때 나는 주로 라이언에어를 이용해 왔다. 유럽 저가항공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었기에, 비행기 예약이나 이용 자체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처음 라이언에어를 예약할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온라인 예약만 해도 결제까지 다섯 단계를 거쳐야 했고, 중간마다 계속 추가 요금 옵션이 등장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복잡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무엇을 추가해야 하고 무엇은 넘어가야 할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 경험을 쌓고 나니, 이 모든 단계가 결국 수익을 늘리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게 됐다. 두 번째 예약부터는 추가 옵션에는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Next'를 눌러 빠르게 결제하는 요령이 생겼다.
이번 여행은 특히 비행기를 많이 탔다. 몰타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다시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나폴리로, 마지막으로 나폴리에서 몰타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총 8일 동안 네 번이나 비행기를 이용한 셈이다.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항공을 여러 번 타다 보니, 서비스나 승무원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눈여겨보게 됐다. 특히 이번 여행 중 처음 이용해 본 영국 국적의 이지젯(EasyJet) 항공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지젯을 이용한 구간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이탈리아 나폴리까지였다. 지정한 좌석은 비행기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공항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비행기까지 이동한 뒤, 뒷문으로 탑승해야 했다.
특이하게도, 나는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려 가장 먼저 비행기로 향했고, 뒤따라오는 승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새로운 항공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탑승할 때는 승무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뒷문에서 기다리던 여승무원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단순한 실수라고 넘기려 했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유럽인 승객들에게는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새삼 체감했다.
그래도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 수가 정말 적었다. 내 뒷자리 4~5열은 아예 비어 있었고, 비행 내내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나폴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미리 준비해 둔 우산 덕분에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앞뒤 문이 모두 열려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뒷문으로 나가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뒤쪽 남자 승무원은 한참을 서 있다가 앞쪽 승객이 거의 다 내리고 난 뒤에야 “앞문으로 나가달라”라고 지시했다. 기다리던 10여 명의 승객들은 묵묵히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를 맞으며 비행기 뒤쪽에 주차된 버스까지 뛰는 승객들을 보면서, 나는 나만 우산을 쓰고 있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설명도 없고, 미안하다는 인사 한마디도 없던 승무원들. 이지젯 항공사에 대해 실망스러운 감정이 짙게 남았다.
"설마 나 때문에 뒤쪽 문을 막은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아니겠지, 설마 그 정도까지야..."하고 애써 넘겨보려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고객 불만을 접수할 방법이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혹여 불만을 제기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질지 확신이 없었다.
결국 그저 조용히, 내 마음속에 쌓인 불쾌함을 가라앉히기로 했다.